“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에겐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어요. 그들을 경쟁에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 등으로 불리는 헝가리의 거장 안드라스 시프(69)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에 대한 조언을 묻자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콩쿠르 출전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오는 11월 6일과 1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4년 만에 내한하는 시프는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정교한 연주로 세계 클래식계의 주요 무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있다. 지휘자 겸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도 관심이 큰 그는 여러 차례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김선욱 조성진 문지영 등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과도 교감했다. 2008년 첫 내한 당시 마스터 클래스로 만난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그 자리에서 바로 루체른 페스티벌에 초대한 것은 유명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 소중한 친구 정명훈을 언급해야만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오래전 둘 다 우승하지 못했던 콩쿠르에서 만났죠. 하지만, 보세요.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휘자가 되었는지 말이죠!”
시프는 48년 전인 1974년 제5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에서 정명훈과 치열하게 경쟁한 이후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다. 당시 정명훈은 2위, 시프는 4위를 했다. 두 사람 모두 당시엔 우승하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정명훈은 지휘자로, 시프는 피아니스트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지한파’인 그는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언제나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서울은 늘 내게 감동을 줬다. 특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젊은 관객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다”면서 “이번 내한 공연을 통해 부산을 처음 방문하게 돼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프는 투어 공연에 늘 자신의 전속 조율사 토마스 휩시와 함께한다. 관객에게 가능한 한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그는 “내 전용 피아노와 함께 투어를 다니는 게 이상적이지만 끔찍할 정도로 비싼 비용이 든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면서 “내 전속 조율사는 투어 현장의 피아노를 내게 맞게 조율해준다. 그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선 시프는 고전음악을 중심으로 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곡 중에서 들려줄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추후 공개된다. 최근 시프는 특정 곡목을 미리 발표한 뒤 순서대로 연주하는 일반적 방식 대신 당일 공연장의 음향, 피아노의 상황, 관중을 고려해 레퍼토리를 현장에서 선택한다.
“나는 자유와 즉흥의 힘을 믿습니다. 생각해보면 관객에게 무엇을 듣게 될지 2년 후의 일을 미리 말해준다는 것이 평범한 건 아니지요. 2년 뒤 오늘, 저녁 식사로 무엇을 선택할지 말할 수 있나요? 놀라움도 공연의 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통해 나는 훨씬 큰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관객들에게는 공연이 더욱 새로워지고요.”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시프지만 매일 1시간 이상 바흐 연주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는 “바흐의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마치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과 같다”면서 “마음을 정갈히 하고, 영혼과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매우 완벽한 일상”이라고 답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