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품 제조기업인 ‘푸르밀’이 갑자기 사업종료를 선언해 400명에 이르는 임직원들이 하루아침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푸르밀 임직원들은 소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죠. 소비자들은 뭉클해하며 “고생했다” “감사했다”는 말로 화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외쳤습니다. “고마웠어. 가나초코우유”를 말이죠.
이 외침은 지난 17일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가 전 직원에게 메일로 사업종료와 정리해고를 통지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메일 한 통으로 정직원 350명, 협력업체 직원 50명, 배송기사 100명, 500여개 대리점의 점주까지 1000명 가까이가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됐습니다.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엔 관련 글이 쇄도했죠. “충격적이다” “남 일 같지 않다” 등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게시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중 눈길을 끈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지난 18일 ‘가나초코최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블라인드 회원이 쓴 ‘지금까지 푸르밀 제품을 사랑해주셨던 분들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가나초코최애’님은 푸르밀이 자신의 첫 직장이라고 소개한 뒤 푸르밀 제품과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어릴 때 마시던 ‘검은콩이들어있는우유’, 엄마가 마트 다녀오실 때마다 사 오던 ‘비피더스’, 기분이 울적한 날 위로해 줬던 ‘가나초코우유’ 등 제품마다 깃든 추억을 일일이 나열하며 자사 제품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가나초코최애’님은 처음 입사했을 때 추억과 애정이 담긴 제품을 다룬다는 게 설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고 했습니다. 잘나가던 제품도 몇 년째 매출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윗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졌고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도 점점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버티다 결국 문을 닫게 됐는데 그 소문이 언제 퍼졌는지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대량 구매를 했다고 합니다. 관리자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한 ‘가나초코최애’님은 때론 날카로운 지적, 때론 달콤한 칭찬을 들으며 희로애락을 느꼈고 그게 다 소비자인 ‘그대들’ 덕분이라고 했죠. 해당 게시물엔 응원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또 다른 직원도 감사 인사를 전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푸르밀고마웠어’라는 닉네임의 블라인드 회원이 쓴 ‘푸르밀 안녕’이라는 제목의 글엔 애사심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자신이 푸르밀에 입사했을 때 아버지께서 꽤 자랑스러워하셨다는 말로 시작된 글엔 직원들이 급여 삭감까지 감당하며 회사 경영에 이바지하고자 했지만 결국 돌아온 건 자신을 해고한 당사자에게 내일도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탄했죠.
그러면서도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소비자들에게 힘을 얻어 내일은 부디 남은 직원들과 조금 웃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지속적인 매출 감소로 어려워진 회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모든 이유는 푸르밀 직원들의 발걸음과 이를 함께 걸어준 여러분 덕분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를 본 많은 블라인드 이용자들은 “눈물 난다” “왜 울리냐” “푸르밀 형들 감동이다” 등의 댓글을 쏟아냈습니다. ‘좋아요’가 무려 800건을 육박했죠. 이후 소비자 입장에서 푸르밀 임직원에 화답하는 게시물도 등장했습니다. 한 블라인드 이용자들은 ‘푸르밀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는 제목의 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죠.
그는 어머니가 일 끝나고 매일 사 오던 ‘검은콩이들어있는우유’를 집에서 혼자 기다렸다면서 자신에겐 그저 그런 우유가 아닌 어머니와의 소중한 추억 그 자체였다고 했습니다. 푸르밀 소식을 듣고 오랜 친구와 작별하는 기분이 들어 슬프다고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이용자도 ‘그동안 푸르밀 책임져주신 모든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게시물엔 제품에 대한 추억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진 푸르밀 임직원들에게 감사했다는 인사가 담겼습니다.
이처럼 소비자를 감동시킨 임직원들의 애사심은 갑작스러운 사업종료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거라 감히 장담합니다. 지난 8월 블라인드에 올라온 기업 리뷰를 보면 평점 1.0에 ‘절대 오면 안 되는 곳’이라는 한 줄 평이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좋다”는 것을 유일한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회사가 어려워도 임직원들은 소비자들에게 최선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왔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김성곤 푸르밀 노조위원장도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28년간 푸르밀에서 근무했다고 한 김 위원장은 “직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소식에 지난해부터 본사 부서장들과 직원들이 임금 삭감에 동참해 왔다”며 “그러나 푸르밀의 오너는 임금 삭감 없이 100% 급여를 수령하고 지난 1월 퇴직하면서 퇴직금으로 30억원까지 받았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또 “44년 회사가 유지되는 동안 쟁의 한번, 파업 한번 없었는데 공고문 한 장으로 전 직원을 해고하겠다고 한다”며 “어떻게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하루아침에 각 가정을 파탄내는 살인행위를 할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이사와 나눴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대표이사를 만나 ‘공개적인 매각을 하든 살길을 열어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하면서 모든 것을 위임할 수 있다’고 했지만 대표이사는 ‘더 이상 얼굴 볼 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애사심 넘치는 직원들이 주인의식 없는 오너 밑에서 제품을 만들어 온 과정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것이 ‘비피더스’ ‘검은콩이들어있는우유’ ‘가나초코우유’에 ‘안녕’을 고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