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공연 그룹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1979년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곡예사 기 랄리베르테가 친구들과 만든 거리 공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82년 동료들과 ‘하이힐 클럽’이라는 단체를 만든 랄리베르테는 기존 서커스의 필수 요소였던 스타 곡예사와 동물 쇼를 없애는 대신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발레 등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참신한 줄거리 아래 음악, 무용, 분장, 조명을 활용한 예술적 서커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태양의 서커스라는 이름은 1984년 태양이 에너지와 젊음을 상징하는 데서 지었다고 한다.
특히 이탈리아 출신 벨기에 연출가 프랑코 드라고네(1952~2022)가 1984년 합류하면서 지금과 같은 태양의 서커스가 완성됐다. 지난 9월 타계한 드라고네는 1985년 ‘마법은 계속된다’를 시작으로 ‘서커스를 재발명한다’ ‘살팀방고’ ‘미스테르’ ‘알레그리아’ ‘퀴담’ ‘O’ 등 10편을 연출했다.
태양의 서커스 성장 초기 드라고네가 예술적 완성도를 책임졌다면 재정적인 안정은 1990년 ‘카지노 황제’ 스티브 윈 당시 미라지 리조트 그룹 대표와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라스베이거스를 카지노만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도시로도 만들고 싶었던 윈은 랄리베르테에게 1993년 개관하는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에 극장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태양의 서커스의 첫 상설공연 ‘미스테르’다. 그리고 1년 앞서 선보인 빅탑(텐트)공연 ‘살팀방고’는 태양의 서커스가 북미를 넘어 본격적으로 해외투어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2007년 ‘퀴담’으로 처음 내한한 태양의 서커스
태양의 서커스는 빅탑을 가지고 도는 투어공연, 라스베이거스 등 전용극장에서의 오픈런 상설공연, 아레나(체육관)에서 하는 투어공연, 브로드웨이 등에서 하는 극장공연의 4가지 형태로 이뤄져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양의 서커스는 세계로 뻗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라스베이거스를 공연의 성지로 바꿔놓았다. 1998년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상설공연으로 만들어진 ‘O’는 바로 태양의 서커스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서커스와 다이빙, 싱크로나이즈 등을 결합한 ‘O’는 서커스의 한계를 새로운 경지로 확장했다.
초기 성장에 기여한 드라고네와 윈이 1999년과 2000년 떠난 이후에도 태양의 서커스는 새로운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승승장구했다. 2003년 에로틱한 18금 서커스 ‘주매니티’, 2004년 캐나다 연출가 루이 르파주가 대본과 연출을 맡은 ‘KA’ 등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상설공연들이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다. 이외에도 ‘드랄리온’ ‘바레카이’ ‘코르테오’ ‘쿠자’ 등 새로운 투어공연들 역시 호평을 받으며 10년 넘는 장기공연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마카오와 도쿄 등 세계적인 관광 도시들이 앞다퉈 상설공연을 유치했다.
태양의 서커스가 한국을 처음 찾은 것은 위세가 대단했던 2007년 ‘퀴담’과 함께였다. 당시 ‘퀴담’은 서커스의 신세계를 보여주면서 문화산업의 성공 사례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태양의 서커스도 2010년대 들어 부진이 이어졌다. 새로 만든 상설공연과 투어공연이 잇따라 3~4년 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결국, 재정난이 가중돼 5000명 넘던 인력 가운데 50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게다가 창업주 랄리베르테가 2015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체 지분의 90% 가운데 80%를 미국의 사모펀드 TPG캐피털과 그 파트너인 중국 푸싱그룹(復星·FOSUN)에 80%를 넘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현재 태양의 서커스 주식은 TPG캐피털 80%, 랄리베르테 가족 10%, 퀘벡주연금펀드가 10%로 구성돼 있다. TPG캐피털은 태양의 서커스 인수 후 경영진을 대부분 교체했지만, 예술적인 부분엔 손을 대지 않았다. 이어 2017년 또 다른 퍼포먼스 기업인 블루맨 그룹을 인수하며 재도약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가 복병이 됐다. 태양의 서커스는 2020년 5월 모든 공연을 중단하고 직원의 95%에 달하는 3500여 명을 일시 해고한 뒤 파산신청을 했다. 다행히 공연 중단 이후 1년 2개월 만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미스테르’ ‘O’를 시작으로 공연을 재개했다. 현재 태양의 서커스는 전 세계에서 20개의 공연을 진행 중이거나 진행을 앞두고 있다.
잠실에 설치한 빅탑 등 거대한 빌리지
태양의 서커스가 ‘뉴 알레그리아’와 함께 4년 만에 한국에 왔다. 2007년 ‘퀴담’으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 이후 ‘알레그리아’ ‘바레카이’ ‘마이클 잭슨 임모털 월드투어’ ‘퀴담’ ‘쿠자’에 이어 7번째다. 2008년 국내에서도 공연된 ‘알레그리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뉴 알레그리아’는 오는 20일 개막해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 설치한 빅탑에서 내년 1월 1일까지 공연된다.
1994년 태양의 서커스 1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알레그리아’는 19년 동안 40개국 255개 도시를 투어하며 1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매료시킨 히트작이다. 스페인어로 기쁨, 희망, 환희를 뜻하는 ‘알레그리아’는 몰락해가는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권력을 다투던 인물들이 진정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음악은 1995년 음반 발매 이후 55주간 빌보드 월드뮤직 차트에 올랐으며, 타이틀곡 ‘알레그리아’는 1996년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창립 25주년이던 2019년 연출, 음악, 곡예, 세트, 의상, 조명, 분장 등 작품의 모든 구성요소를 새롭게 재해석해 ‘뉴 알레그리아’를 만들었다.
‘뉴 알레그리아’는 왕국을 재현한 2층 규모의 세트와 975m의 왕관 모형이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며,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96벌의 의상과 캐릭터에 맞춰 30여 개의 다른 메이크업으로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투어에는 전 세계 19개국 53명의 아티스트들이 출연해 텀블링, 저글링, 훌라후프, 아크로바틱 등 다양한 곡예를 선보인다. 그리고 두 명의 곡예사가 나란히 공중그네에 매달려 거울처럼 같은 동작을 하는 ‘싱크로나이즈드 트라페즈 듀오’가 새롭게 추가됐다.
태양의 서커스는 이번 ‘뉴 알레그리아’ 공연을 위해 잠실종합경기장에 ‘그랑 샤피토’로 부르는 빅탑을 세웠다. 그랑 샤피토는 25m 높이의 거대한 강철 기둥 4개가 지지하며 크기는 높이 19m, 지름 50m로 2600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또한, 550개의 말뚝을 설치해 시속 120㎞의 강풍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빅탑 주변에 상점, 분장실, 대기실, 의상실, 식당, 장비실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직접 설치해 하나의 마을을 완성했다. ‘빌리지’라고 불리는 전체 시설을 완성하는 데는 28일 정도가 필요하다.
태양의 서커스의 홍보 담당자 프란시스 잘베르트는 지난 14일 빌리지 공개 행사에서 “투어 때마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이사시키며 공연하는 것”이라며 “출연 아티스트들을 포함해 113명의 팀이 이 안에서 공연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