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신고, 몇배로 늘어나는 게시물”…디지털성범죄 감시리포트

입력 2022-10-17 14:05 수정 2022-10-17 14:14
서울시 디지털성범죄 시민감시단이 '지인 능욕' 컨텐츠로 신고하자 비공개로 돌린 한 트위터 계정의 모습. 팔로우를 신청하면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 사이트에 10대를 주 타깃으로 한 이른바 ‘지인 능욕’ 게시글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는 여성’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하던 소극적인 행태는 점차 당사자의 신상을 공개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성적 테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7~10월 국내외 35개 플랫폼의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을 모니터링해 신고‧삭제한 서울시 시민감시단의 최종 보고서에는 게시글 1개를 지우면 5개가 올라오는 복마전 속 악전고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워도 살아나는 지인 능욕의 덫

국민일보가 입수한 시민감시단 801명의 활동 내역 및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지인을 타깃으로 한 2차, 3차 가공 형태의 성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 감시단원 A씨는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지인 능욕 또는 지인 박제(사진 공개) 계정 14개를 신고했다.

대부분 피해자 사진을 공개한 뒤 메시지(DM)를 유도하고, 불특정 다수가 접근하면 피해자의 신상과 정보를 전달한 뒤 사진 합성을 요구한다. 사진을 받고 나면 텔레그램 등 메신저 단톡방을 통해 유통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피해자의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을 메시지로 알려줄 테니 해당 계정에 댓글을 달아 괴롭혀달라는 게시글도 있었다.

A씨는 보고서에서 “하루에 수십 개의 게시물을 신고 처리했는데 잠깐 지나면 신고한 게시물의 수 배의 게시물이 업로드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인 박제 게시물 피해자의 99%는 미성년자 여성이며 지인 신상정보를 제공하는 쪽도 대부분 미성년자일 것”이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라고 해서 불특정 다수에 신상정보를 유포해 피해자가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고, 능욕당하게 하는 행위가 정말 잘못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역시 트위터에서 ‘ㅈㅇㄴㅇ’(지인 능욕) 게시글 등 7개 계정을 적발한 B씨도 “아무리 삭제하고 신고해도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며 “트위터 자체에서든, 우리나라 인터넷 관련 법규를 수정해서든 인터넷 성범죄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시민감시단 활동 전에는 솔직히 나와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였으나 활동을 할수록 내 친구가, 내 지인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가까운 일반인을 타깃으로 한 이런 형태는 단순 합성에서 벗어나 신상 정보를 활용한 범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장은 17일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의 경우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보완된 부분이 있다”며 “그러나 다양화되고 있는 성적 괴롭힘에 대해선 현재 법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사이트에 지인의 연락처를 도용해 홍보 글을 올리거나, 신상정보를 이용해 가짜 SNS 계정을 만든 뒤 노출 합성 사진 등을 올리는 식이다. 2020년에는 인터넷 랜덤채팅방에 동료 여경을 성적으로 비하하고 전화번호를 공개해 음란 메시지 등을 유도한 경찰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감시단 C씨는 “일반인 여성과 학생의 얼굴을 무단으로 게재하는 계정이 정말 많음에도 즉각 삭제처리가 되지 않는 건 상당한 문제”라며 “음란물뿐 아니라 무단으로 얼굴 등을 게시, 공유해 박제하고 능욕하려는 것도 범죄의 일종임을 인식하고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주일 새 이들이 신고한 트위터 계정을 들어가보니 일부는 ‘없는 계정’으로 나오거나 트위터에서 직접 차단 조치했다. 그러나 일부는 비밀 계정으로 전환돼 팔로우를 신청하면 자체 검증을 통해 수락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비밀 계정을 통해 여전히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인 능욕 범죄의 문제는 피해자가 성범죄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서 센터장은 “지인 능욕처럼 (번호나 사진 등을 단순 활용한) 사례는 성폭력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사이버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개인정보 도용과 같은 것을 적용할 수 있다”며 “이 탓에 영상물 삭제 지원처럼 성폭력 피해자로서 받을 수 있는 보호 방안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서를 가도 (여성청소년과가 아닌) 사이버 수사대로 가게 되는 것”이라며 “성폭력으로 이 문제도 규정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범행 주체도, 대상도 청소년”

시민감시단이 좌절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같은 게시물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당 부분 10대라는 점이다. 감시단 F씨는 “활동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이런 불건전한 게시글을 올리고 유포하는 사람 중 학생이 참 많다는 사실이 참담하게 만든다”며 “○○나 XX를 검색하면 주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사진을 올리거나, ‘맘눌뎀’ 등의 태그를 걸어 대화를 유도한다”고 말했다.

‘맘눌뎀’은 ‘마음에 들어요 표시 누르면 DM보내겠음’의 약자로, 10대들을 겨냥한 은어다. 그는 “직접 셀카를 올리거나 신상정보에 미성년자임을 어필하는 것을 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아이들이 건전치 못한 방법으로 관심을 끌거나 위로받으려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트위터상의 동영상을 검색해주는 사이트에서 이 감시단원이 올린 키워드를 검색하자 아직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이 버젓이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검색사이트는 정부가 차단하고 있지만 간단한 앱 하나만으로도 우회할 수 있어 인터넷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접근하는 걸 막기는 역부족이다.

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다른 플랫폼에서도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시민감시단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서 청소년, 학생 등의 ‘몰카’를 올리는 계정을 다수 적발했다. 그러나 불법 촬영물임에도 선정적인 모습이 아니다 보니 신고해도 삭제처리가 되지 않았다.

실제 해당 계정을 방문해보니 여전히 계속 운영 중이었다. 이들 사이트를 적발한 감시단 G씨는 “몰카 당사자에게는 자신이 대상이 되었는지 알릴 수도 없어 과연 또다시 반복될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런 계정은 디지털 성범죄로 신고를 하려고 해도 경찰청 홈페이지에 신고방법이 명확히 나와 있지 않았으며, 당사자인 경우에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고 지적했다.

시민감시단이 적발한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 1만6455건을 피해자 연령별로 분류하면 성인이 9075건(55.2%)으로 절반 정도였고, 아동‧청소년도 2700건(16.4%)나 됐다.

서울시 의뢰로 ‘2021 서울시 디지털 성범죄 시민감시단 결과보고서’를 펴낸 김기범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팀이 시민감시단 221명을 대상으로 ‘성범죄 물에 등장한 인물의 연령’을 조사한 결과 10~20대라고 답한 사람이 211명(95.5%)으로 가장 많았다. 8세 미만의 영‧유아 답변도 2명이었고, 30~60대는 9명이었다.

김기범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팀이 시민감시단 221명을 대상으로 ‘성범죄 물에 등장한 인물의 연령’을 조사한 결과 10~20대라고 답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 계정이 사용하는 저급한 표현들도 청소년의 왜곡된 성인식을 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감시단 H씨는 “불법으로 촬영하고 유포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너무나 속상하지만 비하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을 쓰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보게 된 것도 참담하다”며 “이런 표현들은 미성년자에게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할 수 있음을 고려해 더더욱 적극적으로 신고에 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번거롭더라도 계속 신고할 것”

감시단 I씨는 “비록 모든 신고 내용이 빠르게 처리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며 “그러나 해당 게시물의 심각성을 강조해 명백한 범법행위임을 입증하였기 때문에 구글 측에서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처음 활동할 당시에는 신고 절차가 복잡하기도 하고, 내 실명과 연락처, 서명 등을 요구해 부담스럽다고 느꼈다”며 “하지만 활동을 거듭할수록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면서 적극적으로 신고하게 됐다. 내 신고로 인해 링크들이 삭제되는 것을 보면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감시단 J씨는 “피해자는 자신이 (영상에) 찍혔다는 사실, 그게 유포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거나, 알더라도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몇 영상의 경우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촬영되었으나 휴대전화 분실 등 불의의 사고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신고가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감시단 K씨는 일부 인스타그램 계정이 신고당한 후 불법 촬영물을 모두 삭제한 점을 언급하며 “내 자식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속해서 신고 활동을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801명의 시민감시단은 여성 566명, 남성 235명으로 구성됐다. 20대가 608명(75.9%)으로 가장 많고 이어 30대(10.6%), 40대(7.4%), 50대(3.6%) 등 순이다. 직업별로는 학생 546명(68.2%), 직장인 159명(19.9%), 프리랜서 26명(3.2%) 등으로 구성됐다. 서울시는 초‧중‧고 교사 등 교육 관련 경험자를 우선 선발했다고 밝혔다. 2019년 처음 결성된 뒤 2년마다 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다.

강준구 김이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