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보완하느라 늦어진 시공… 법원 “건축사에 벌점 안 돼”

입력 2022-10-16 15:24 수정 2022-10-16 15:25

건축사사무소가 계약을 따낸 뒤 설계를 보완하느라 시공이 늦어졌다면 이에 대해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정중)는 A건축사사무소가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부실벌점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사무소는 2017년 6월 공항공사의 부산 강서구 빌딩 신축공사 설계용역 입찰에 참여해 용역계약을 따냈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PHC 파일 공법’을 채택한 최초 실시설계도를 제출했다. 그런데 공사는 공법 간 장·단점을 비교한 결과 ‘헬리컬 파일 공법’이 소음과 진동을 발생시키지 않아 민원 발생이 적고 공사비가 약 48억원가량 절감되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 해당 공법을 채택했다.

헬리컬 공법은 나선형 날개가 부착된 말뚝을 회전시켜 바닥 지지층까지 박아넣는 공법으로 국내에서 지반 깊이가 60m 이상인 공사에 이 공법이 적용된 사례는 이전까지 없었다. A사무소는 2018년 8월 공사 결정대로 헬리컬 공법을 반영한 설계를 제출했다.

하지만 본격 시공에 앞서 실시된 감리에서 헬리컬 공법의 안정성 문제가 제기됐고, 당초 설계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A사무소는 최하층 바닥 두께를 증가시키는 방법 등으로 헬리컬 공법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반영해 최종 실시설계도를 제출했다. 설계도 변경으로 착공이 늦어지면서 준공은 당초 목표치보다 210일 뒤로 미춰졌다.

공사는 신기술 또는 신공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보완시공이 추가돼 공사가 지연됐다며 A사무소에 벌점 2점을 부과했다. 추후 입찰 참가 자격 사전심사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A사무소는 벌점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A사무소의 손을 들어줬다. 벌점 규정이 정하고 있는 ‘보완시공’은 공사에 착수한 뒤 보강을 위한 작업이므로 시공 전 ‘보완설계’가 이뤄진 경우는 포함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건설기술 진흥법상 보완시공은 시공이 이뤄진 후에 발생한 추가 시공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 “당초 헬리컬 공법에 대한 시공 전 시험을 진행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주체가 공사인 이상 A사무소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