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송국’ 이창호 “개콘 종영 날, 모두가 통곡할 때 웃은 이유...” ①

입력 2022-10-16 13:21 수정 2022-10-24 20:11

2020년 6월 26일. 이날 개그콘서트는 2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마지막회답게 ‘개그콘서트’ 전성기에 출연했던 개그맨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고, 개그맨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쉬운 마음을 끝내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날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웃은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개그맨 이창호와 곽범이었다. 두 사람은 사라진 무대는 추억과 과거로 남겨두고 새로운 무대를 꿈꿨다. 바로 유튜브였다.

이창호와 곽범의 개그를 눈여겨본 현 소속사 대표의 “생활비를 지원해 줄 테니 6개월만 해보라”는 제안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6개월간 고군분투했지만 ‘빵송국’ 채널의 구독자는 고작 2000여명(현재 41만명).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6개월의 정점을 찍는 마지막 달, 마지막 주에 올린 ‘이호창. 직원에게 고함치는’ 영상이 대박이 났다. 이 콘텐츠는 네티즌에게 ‘머리가 띵할 정도로 웃기는 진짜 고차원의 개그’라는 평가를 받으며 4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창호는 유튜브에서 ‘한사랑산악회 이택조’ ‘매드몬스터 제이호’ ‘전략본부장 이호창’ 등 다양한 부캐릭터로 활동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지난 7월부터는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출연을 비롯해 지상파에서도 이를 입증해 나가고 있다.

때론 인기 유튜버로 유명해진 자신의 인기를 체감해 보기 위해 부캐릭터 한사랑산악회 이택조로, 이호창 전략본부장의 옷을 입고 백화점을 방문하곤 한다. 그와 마주한 대중은 환호한다. 하지만 정작 개그맨 이창호로 자신의 옷을 입고 길을 나서면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다. 수많은 부캐릭터를 가진 인물로 매 순간 정체성을 바꿔가며 민첩하게 대응하며 살아가면서도 ‘나는 누구이며, 오늘 이창호는 어디 있었는가’ ‘나는 왜 이렇게 그릇이 작은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이창호가 더미션의 복음식당을 방문했다.

더미션의 유튜브 콘텐츠 ‘복음식당’은 임형규 목사(라이트하우스서울숲교회)가 오픈 키친에 초대된 손님에게 직접 요리해 주는 따뜻한 한 끼를 먹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임 목사는 목회자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내려놓고 대학가의 카페를 방문하면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카페 주인 부캐릭터 ‘홍카주’(홍대카페주인)로 손님에게 다가간다.

유튜브 속 부캐와 부캐가 만난 ‘복음식당’의 세 번째 이야기. 다양한 부캐를 갖고 살아가는 이창호의 요즘 고민, 이상형, 기부, 인생의 목표까지 ‘복음식당’에서 홍카주와 이창호가 나눈 대화를 문답으로 정리했다. 복음식당 콘텐츠는 유튜브 ‘더미션’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다.


임형규 목사 (이하 임 목사): 요즘 아주 핫한 유튜버이자 개그맨인 이창호씨를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이창호: 안녕하세요. 웃음을 드리는 달란트를 조금 받아서 귀하게 쓰고 있는 코미디언 이창호입니다.

임 목사: 먼저 따뜻한 차 한잔 드세요. 커피보다는 홍차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창호: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웃음) 근데 너무 피곤할 때는 커피만 한 게 또 없어서 마시고 있습니다.

임 목사: 오늘 제가 이창호씨를 위해 준비한 식사는 하이라이스입니다. 원래 볶음밥만 하는 복음식당인데 특별하게 오늘은 매드 몬스터의 신곡 앨범을 축하하며 ‘Hi 에이치하이 하이라이스’로 준비해 봤습니다. 하이라이스를 맛있게 만들어 대접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창호: 와~근데요 목사님, 스타일이 너무 좋으세요.

임 목사: 감사합니다. 늘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웃음)

이창호: 제가 목사님께 옷 입는 스타일을 좀 배우고 싶네요.

임 목사: 저는 지나다니다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을 보면 그냥 사요. 살까 말까 망설이는 것보다 그냥 사고 아내한테 혼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먼저 저지르고 아내한테 혼납니다.(웃음)

이창호: 요즘은 어떤 스타일을 즐겨 입으시는지요?

임 목사: 저는 하와이안 셔츠 좋아합니다. 어랏? 근데 원래 제가 이창호씨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인터뷰를 당하고 있네요.(웃음) 코미디언으로 본인을 소개하셨는데 코미디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창호: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보니까 “개그맨을 해야겠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걸 잠깐 잊고 살았어요. 운동을 하다가 다쳤는데, 잠깐 7개월 정도 쉬면서 교회에서 친구들과 성극을 했어요. ‘아, 내가 가야 할 길이 이 길이었는데 많이 돌아왔구나,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게끔 하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개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임 목사: 성극이면 연극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개그로 가셨어요?

이창호: 거울을 보면 주님이 저를 오밀조밀하게 만드신 이유가 있더라고요.(웃음) 저를 더 멋지게 만들어 주셨다면 연극 쪽으로 갔을 텐데 각자의 길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임 목사: 그럼 ‘내가 웃긴 사람이구나’라는 것은 언제 깨달았나요?

이창호: 초등학교 때 친구들끼리 싸우면 꼭 저를 불렀어요. 저를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고요. 다른 반 친구들도 싸우다가 저를 불러서 제 얼굴을 보면 웃어버리더라고요.

임 목사: 2014년 KBS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하셨죠?

이창호: 에이~1등, 꼴등이 뭐가 중요하겠어요.(웃음) 그냥 이름을 부르는 순서가 그랬던 것 같아요. 27살, 그렇게 이르지도 않고 늦은 나이도 아닌 적당한 시기와 타이밍에 개그맨이 됐던 거 같아요.

임 목사: 개그맨이 된 후에 ‘나 이제 됐어! 나 이제 제2의 유재석이야!’ 뭐 그런 시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창호: 19살에 개그를 시작해서 27살에 개그맨이 됐어요. 7년여간 이 순간을 준비하며 꿈꿨던 삶이었죠. 개그맨이 된 이후 처음 무대에 올라간 뒤 그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일약 스타가 돼서 행복한 스트레스,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민만 생기고 스트레스만 늘더군요.
왜냐하면 개콘 무대에 올라가서 빛나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여간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무대에 올라가서 웃기는 건 고사하고 코너 하나 통과되는 것조차 너무 힘들고 내가 무대에 나가려면 누군가는 무대에 못 올라가는 경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슬펐습니다.


임 목사: 그랬군요. 개그콘서트에서 활동을 했었을 때 본인을 돌아본다면요?

이창호: 저는 감사하게도 많은 기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스스로가 그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때 왜 내가 그때 그렇게 했을까.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기회를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많아요. 그때는 제가 많이 소심했던 것 같아요.

임 목사: 듣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정말 웃긴 사람만 모인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되게 컸을 것 같네요. 혹시 부러웠던 사람이 있었나요?

이창호: 개그맨 동기 14명이 뽑혔는데 개성이 다 달랐어요. 누군가는 아이 같고 순수해서 뽑혔고, 다른 누군가는 몸을 쓰는 동작이나 아크로바틱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없는 능력을 갖춘 영웅을 모두 만나는 느낌이라 다 부러웠습니다.

임 목사: 그렇군요. 개콘 종영됐었을 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이창호: 개콘 마지막회를 보면 출연자들이 다 울어요. 왜냐하면 대한민국 코미디 역사의 산 프로그램이었고 개그맨들이 몸담고 있었던 직장인데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됐으니까요. 모두가 다 나라 잃은 백성처럼 우는데 딱 두 명이 안 울어요. 그게 곽범이랑 저였어요. 저는 그때 유튜브를 시작하고 있었던 터라 사라진 무대는 추억과 과거로 남겨두고 새로운 뉴 플랫폼의 무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너무 기대돼서 안 울었어요.

임 목사: 유튜버로 뜨기 전까지 무명 생활이 길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이창호: 개콘을 한 1년 정도 쉬었던 적이 있었어요. 어느 날 어떤 일을 겪으면서 ‘내가 왜 누군가를 이렇게 웃겨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 영화를 하겠다”며 개그를 내려뒀는데 막상 아무것도 안 하고 집 안에만 있었죠. 그때 세상 밖으로 끌어내 준 사람이 지금 같이하고 있는 곽범이에요. 제일 어두운 시기에 사망의 골짜기에서 저를 데리고 나가준 사람이죠. 또 사망의 골짜기까지 올라와서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 그 광야에서 도와준 사람이 유튜브 피식 대학 친구들입니다.

임 목사: 곽범씨에게 왜 그때 내게 손을 내밀었는지 물어본적 있나요?

이창호: 무대도 같이 오르고, 행사도 같이 뛰면서 자기가 봤을 때 제가 너무 재밌었대요.(웃음)

임 목사: 개인적으로 이창호씨는 무대 위에서 공개 코미디도 잘하지만, 유튜브 콘텐츠에 훨씬 더 최적화되신 분인 것 같아요.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이창호: 홍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현 소속사 대표님이 저희 공연을 보고 “둘이(이창호&곽범) 케미가 좋으니까 유튜브를 해보라”고 제안하셨어요. 시작할 때는 ‘굳이 유튜브를 이렇게 힘써서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개콘도 종영된 시점에 먹고살 길도 막막했어요. 생활비 지원을 받으면서 ‘딱 6개월만 해보고 안 되면 각자의 길을 가자’고 마음먹고 시작했어요. 6개월간 구독자 수가 3000명도 안 됐죠. 근데 내려놓기 마지막 달, 마지막 주에 영상 하나가 터지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죠.

임 목사: 유튜브 콘텐츠가 말그대로 ‘빵’ 터지면서 삶이 조금 바뀌었나요?

이호창: 제일 먼저 바뀐 건 아무래도 수입이었어요. 그 시기 전과 후에 입는 옷 타고 다니는 차 사는 곳 먹는 거 너무 달라졌어요.

임 목사: 와~어느 정도로 달라졌을까요?

이호창: 음... 가격표 안 보고 맛있는 음식 주문해서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살 수 있고 그리고 어딘가에 내가 가진것을 조금 나눌 수 있을 정도요. 요즘은 행복한 스트레스라는 말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임 목사: 요즘 사람들도 많이 알아보시지요?

이창호: 얼마 안 됐어요. 예를 들어 제가 이택조 복장으로 등산복을 입고 나가서 말을 약간 걸쭉하게 하면 다 알아보세요. 이호창처럼 정장을 입거나 아이돌처럼 옷을 입고 있으면 다 알아보세요. 지금 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가끔 등산복 입고 일부러 백화점도 가고 젊은이들이 많은 곳에도 찾아가는데요. ‘자기 유명세를 확인하려고 그 복장으로 백화점에 가느냐’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게 저에게는 큰 자극이 됩니다. (웃음)

임 목사: 반대로 불편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이창호: 맞아요. 부캐릭터 매드몬스터 일로 활동할 때는 제가 편하게 욕을 못 해요. 전 세계 70억 인구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니까 행동이나 언행이 조심스럽죠. 전략본부장인 이호창 정장을 입고 있을 때도 에티튜드를 지켜줘야 하죠. 그래서인지 등산복 입고 막말할 수 있는 이택조 캐릭터가 가장 편해요.

임 목사: 개인적으로 이택조는 중년 남성 연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부캐릭터 콘셉트를 만들어낼 때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이창호: 공채 시험 준비하며 아저씨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 모든 데이터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부캐라는 게 다른 사람이 돼서 그 사람의 삶을 구현하는 거잖아요. 돌이켜보면 저희 아버지 술 드셨을 때, 영등포시장에서 싸우고 계신 아저씨들의 모습 등 일상에서 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이죠. 레논도 영등포시장에 가면 대낮에도 아주 엘레강스하게 돌아다닌다니까요.(웃음)

임 목사: 이창호씨 정체성은 코미디언일까요? 아니면 유튜버일까요?

이창호: 와~이런 질문은 처음인 것 같네요. 저는 코미디언인 것 같아요. 유튜버라면 항상 트렌디하고 유튜브만의 감성을 담아내야 하는데 곽범과 저는 저희가 하고 싶은 콘텐츠를 하고 있어서 코미디언인 듯해요.

임 목사: 유튜브를 하다 보면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이창호: 그 부분에 있어서는 공영방송을 했던 경험이 도움 되는 것 같아요. 공영방송 출연 당시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고, 콘텐츠의 선을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지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너무 선 넘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들이 많아서, 저희 콘텐츠는 약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임 목사: 유튜브에서 같이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거나 콜라보 해보고 싶은 사람 있나요? 예를 들어 이효리나 BTS등...?

이창호: 아유~저희가 감히 그분들과요?(웃음) 함께하고픈 분이 너무 많지만 누구를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 거 같아요.

②편에 계속...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