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돌보다 풀어주면 동물학대일까? [개st이슈]

입력 2022-10-15 10:03
최근 한 동물단체 대표가 1년 넘게 실내에서 돌보던 길고양이를 다시 거리에 방사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방사된 6마리 중 일부는 심한 피부병을 앓는 등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 제공

길고양이를 포획해 집에서 돌보다가 풀어줬다면 이건 불법유기일까, 합법적인 방사일까.

최근 한 동물단체 대표가 1년 넘게 실내에서 돌보던 길고양이를 다시 거리에 풀어준 뒤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방사된 고양이는 임신한 고양이와 새끼를 포함해 총 6마리. 단체 대표는 위급한 상태의 길고양이를 잠시 돌보다가 방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회원들은 동물 유기에 해당한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일부 회원이 사건을 관할 서울 서대문구청에 신고했고, 신고를 받은 구청은 지난 7월 고양이 6마리를 유기한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로 모 동물단체 대표 조모씨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현재 수사는 서대문경찰서에서 진행 중이다.

구청 관계자는 “세 곳의 법무법인에 의뢰한 결과 두 곳으로부터 대표의 행위가 동물보호법상 동물유기가 맞다는 판단을 받아 수사 의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신한 고양이 구조부터 무단 방사까지…1년여간 벌어진 일

구청 측에 따르면 조 대표는 지난 5월 밤 8시쯤 봉사자 1명의 도움을 받아 이동장에 담긴 고양이들을 서대문구 의회 인근에 풀어줬다.

해당 고양이들은 지난해 3월 조 대표가 회원들의 요청으로 포획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포획된 고양이는 임신한 암컷 1마리. 구조 직후 암컷이 4마리의 새끼를 출산하고 약 1주일 뒤 2㎞ 떨어진 대학가에서 한 마리를 추가로 포획하면서 보호 중인 고양이는 총 6마리로 늘어났다. 조 대표 주장에 따르면 당시 단체에는 유기동물 보호소가 없어 포획한 고양이들을 자신의 부친 아파트에 옮겨 초봄 추위를 피할 때까지만 임시보호한다는 계획이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보호기간이 길어졌을 뿐 예정됐던 방사라는 주장이다.

조 대표와 방사 당시 동행했던 주민 이모씨는 “1년이나 실내에서 돌본 고양이들을 방사하는 건 불법 아니냐고 수차례 물었지만 그때마다 대표는 ‘단체 운영진 동의도 구했고 수의사 자문을 받아 진행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방사된 새끼 고양이들, “피부병, 영양실조 앓아 생존 어려워”

지난 5월 조 대표가 풀어준 고양이들은 건강이 악화하는 등 야생 적응에 실패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새끼고양이 네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조 대표의 동의하에 다시 구조해 보호소에 입소했고, 세 마리는 인근 주민들이 포획해 집에서 돌보고 있다.

주민 이모씨는 “새끼 고양이들은 유기된 지 2개월 만에 심한 피부병과 영양실조를 앓았다”며 “봉사자들이 사비로 동물병원에 데려가 입원 치료했다”고 전했다.

방사된 길고양이들의 지난달 촬영된 모습. 머리와 귓가에 피부병을 앓는 흔적이 보인다. 제보자 제공

비록 야생 적응에는 실패했지만 조 대표는 고양이를 풀어준 게 전문가 자문에 따른 합법적인 방사라고 주장한다. 조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임신한 어미 고양이가 안전하게 출산하고 새끼를 돌볼 때까지 임시보호한 것”이라며 “수의사 상담 결과 방사해도 좋다는 조언을 구해 포획한 곳에 돌려보냈다”고 해명했다.

애초에 길고양이를 돌보게 된 것이 일부 회원들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했다. 단체가 길고양이의 TNR(포획, 중성화, 방사)를 돕는 과정에서 출산이 임박한 암컷 고양이를 임시보호해달라는 회원들의 요청이 있었고, 단체에는 보호공간이 없었던 탓에 모든 책임이 대표에게 떠넘겨졌다는 것이다. 애초 보호기간도 출산과 포유를 마치는 2개월이었지만 예방접종 등 회원들의 추가 요구가 나오면서 방사가 늦어졌다고 했다. 조 대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을 사비로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1년 전 포획한 고양이 풀어주면 유기? 방사?

조 대표의 행위가 방사인지, 유기인지를 판단할 때 핵심 근거는 보호기간. 다음으로는 사람 손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따져봐야 한다. 조 대표는 고양이들을 1년 넘게 실내에서 돌봤지만 사람 손을 타지 않도록 관리했으므로 야생 고양이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조 대표는 “수의사 상담 결과 길고양이인 어미와 함께 있는 새끼들은 순화가 되지 않았고 방사해도 좋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유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다수의 전문가들은 장시간 실내에서 돌본 길고양이를 야생에 풀어놓는 행위는 명백한 동물유기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장시간 실내 보호한 고양이가 길들여지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장기간 동물을 보호한 자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상 소유권자로 등록하지 않더라도 소유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불법으로 판단할 수 있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의 박주연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상 동물 소유자란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동물을 관리, 보호하는 사람을 지칭하므로 이번 사안에서 조 대표는 동물 소유자에 해당한다”며 “다른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아닌 단순 방사하는 행위는 유기범죄가 성립해 3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동물단체의 정책팀장도 “길고양이 임시보호는 중성화 수술 등을 받은 개체를 3일가량 회복실에서 돌보는 등 단기간에 이뤄진다”면서 “1년이나 실내 보호와 관리를 받아 길들여진 고양이를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행위는 유기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양측 모두 선의에서 시작한 행위가 형사처벌 논란으로 번진 것을 두고는 안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사건의 본질은 위급한 길고양이를 구조해 돌본 뒤 풀어준 것이므로 동물 유기로 판단하는 것은 과하다고 본다”며 “구조된 고양이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회원들에게 공개하고 투명하게 소통했다면 고양이들에게 다른 임시보호처를 구해주거나 단체 보호소에 입소시키는 등 충분히 합의점을 찾았을 텐데 수사기관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게 안타깝다”고 진단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