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극은 줄거리가 있는 무용 작품을 가리킨다. 무용은 기본적으로 대사가 없어서 추상성이 강하지만 무용극은 등장인물이 뚜렷하고 스토리가 있어서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춤 기반의 무용극은 최승희와 조택원으로 대표되는 신무용에서 비롯됐다.
전통춤과 서구춤을 절충한 신무용은 초기엔 솔로춤 등 소품이 많았지만, 점차 발레 양식을 차용한 무용극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무용극은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 이후 송범(1926~2007)에 의해서 완성됐다. 송범은 1973~1992년 국립무용단장을 역임하는 동안 ‘별의 전설’(1973)을 시작으로 ‘왕자 호동’(1974) ‘도미부인’(1984) 등 10여 편의 무용극을 발표했다. 설화를 소재로 서양식 무대예술을 흡수한 ‘국립극장식 무용극’은 한국 무용계에서 하나의 장르가 됐다. 이후 송범의 뒤를 이어 국립무용단을 이끈 조흥동과 국수호는 이야기 중심의 무용극에 춤을 강화한 2세대 무용극을 선보였다.
하지만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이었던 설화 소재 무용극은 점차 관객들에게 외면받았다. 변화 없이 비슷비슷한 스타일이 이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졌기 때문이다. 서양의 무용극을 대표하는 발레가 고난도 테크닉을 볼거리로 가진 데다 점차 현대적인 스토리조차 소화하게 된 것과 차이가 있다. 결국, 관객조차 한국 무용극을 밋밋한 드라마와 고루한 이미지로 현대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무용단은 무용극을 꾸준히 선보이며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해왔다. 창단 50주년이던 2012년 송범의 ‘도미부인’을 리바이벌하고 당시 예술감독인 윤성주가 안무한 ‘그대, 논개여’를 선보였다. 또 창단 55주년이던 2017년엔 예술감독 김상덕이 안무한 ‘리진’과 전 예술감독 배정혜가 안무한 ‘춘상’을 만들었다. 다만 이들 작품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레퍼토리로 자리 잡지 못했다.
국립무용단이 올해 창단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번 무용극에 도전한다. 오는 27~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호동’이다. 고구려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설화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송범이 1974년 선보인 ‘왕자 호동’과 1990년 ‘그 하늘 북소리’를 오마주하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11일 오전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전통춤 기반의 무용극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최근엔 많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인 만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이번 작품은 미래의 무용극을 향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범 선생님의 여러 작품 가운데 ‘왕자 호동’을 60주년 기념작으로 선택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8장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국립무용단 간판 무용수이자 다수의 작품에서 안무·조안무로 참여한 바 있는 정소연·송지영·송설이 공동 안무로 나선다. 또 뮤지컬계 히트메이커 연출가로 유명한 이지나가 대본·연출을 맡고, 뮤지컬·드라마·대중음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작곡가 겸 음악감독 이셋(김성수)가 음악을 맡았다.
무용극을 처음 연출하는 이지나 연출가는 이번 작품에서 춤을 통해 주제 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이야기는 배우의 내레이션과 자막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지나 연출가는 “이번 작품은 사랑 이야기를 넘어 전쟁이라는 운명과 사회(국가)에 대립하는 한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44명의 무용수가 단체로 움직일 때 거기 섞이지 못한 호동의 움직임이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객은 이런 호동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