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파기’ 카드 만지작… “핵 전면전 비화” 우려도

입력 2022-10-09 21:04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자 정부·여당에서는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합의 파기를 공식화할 경우 북한에 무차별 도발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이미 낮춘 상황에서 자칫 ‘핵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면서 여권에선 정부가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수차례 발신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최악의 상황에서는 여러 옵션을 모두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지난 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감에서 “북한은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는데 우리만 준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한의 도발 강도를 봐가면서 9·19 합의 효용성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여당도 대북 강경 기조가 완연하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도 “대한민국의 안보를 김정은의 시혜에 맡겨버린 9·19 군사합의를 한 결과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매국 행위였는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9일 “최근 북한의 노골적인 군사적 적대 행위로 인해 정부·여당은 남북이 서로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9·19 합의의 기본정신이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2019년 해안포 사격과 2020년 중부전선 감시초소 총격 등으로 이미 두 차례 합의를 위반한 데 이어 5년 만에 일본 상공을 관통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함에 따라 남북 군사합의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우발적 군사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해온 9·19 군사합의가 실제로 파기되면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국지전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하며 핵무기 사용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입장에선 한국이 실제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할 의지가 있는지 ‘떠보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우리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실험해보기 위해 북한이 서해 등에서 우발적 군사행위를 슬쩍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대한민국이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실제 파기로 간주하는 반응이 나온다면 북한이 이를 명분 삼아 공세 수위를 더 높일 수 있다”며 “군사합의 파기를 북한 도발의 응징 수단으로 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