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충남 서산의 도심 거리에서 아내를 살해한 50대 남성은 최초 신고 접수 뒤 한 달 이상 경찰 조사를 피해오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가정폭력과 접근금지 위반 신고를 접수하고도 남편에 대한 실질적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구속영장이나 잠정조치 신청 등의 적극적 분리 조치도 없었다. 경찰 조사 및 대응이 지연되는 사이 참극이 빚어진 것이다.
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충남 서산경찰서는 아내가 가정폭력 피해를 비롯해 4차례나 신고를 하는 데도 A씨에 대한 조사를 벌이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에게 피해 내용은 청취했지만 피의자 조사를 진행하지 못해 구속영장 신청 여부 등은 판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지난달 1일 남편 A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경찰에 처음으로 신고했다. 닷새 뒤에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재차 신고했다. 이때 A씨는 특수상해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법원에 임시 보호 명령을 신청하도록 안내했다.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지게 한 것이다.
그러나 A씨는 같은 달 9일 또다시 피해자가 일하는 미용실에 찾아가 대화를 요구하다 경찰에 신고당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A씨는 “머리가 어지럽다”고 호소하며 귀가했다. 이날 경찰 조사는 A씨의 인적 사항만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지난달 12일까지 이어진 추석 연휴 기간 A씨는 변호사도 선임했다. 변호사는 “9월에는 일정이 꽉 차 있다”며 출석 연기를 요청했고, 결국 A씨에 대한 본격 조사는 한 달 내내 이뤄지지 않았다. 향후 경찰 출석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 조사가 지체되는 동안에도 A씨의 위협 행위는 계속됐다. 그는 지난달 19일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일주일 뒤 아내가 일하는 미용실에 나타났다. 아내가 스마트워치로 신고를 해 경찰이 출동했지만, 이때도 별다른 추가 조치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밖으로 나가 기다리라’고 하니까 A씨가 가만히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며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할 필요성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범행이 벌어진 지난 4일은 피해자가 A씨를 집에서 쫓아내 달라며 법원에 퇴거 신청서를 접수한 날이다. 당일 오후 A씨는 흉기를 들고 나타나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법원에 임시 보호 신청을 안내하는 등 필요한 보호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4차례나 신고를 접수하고도 끝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피해자를 자주 찾아오는 등 전조 증상이 충분했던 사안”이라며 “경찰이 구속영장이나 잠정조치를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6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살인 혐의로 청구된 A씨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구속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며 “죄송하다”고 했다.
이의재 양한주 김판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