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6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결정으로 국민의힘은 ‘가처분 리스크’라는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됐다. 국민의힘은 ‘정진석·주호영 투톱’ 체제로 당 내홍을 수습하고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준비에 돌입할 전망이다.
여기에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이 전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1년의 추가징계를 결정했다. 이 전 대표의 복귀는 2024년 1월에야 가능하게 됐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늦어도 내년 2월쯤에는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이 전 대표가 차기 당대표 후보로 다시 나설 수 있다는 일각의 시나리오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날 이 전 대표가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 6명에 대해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국민의힘을 상대로 낸 비대위 출범 관련 각 의결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모두 각하됐다. 1차 가처분 때 이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던 재판부가 3~5차 추가 가처분 사건(2차는 취하)에서는 국민의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의 판단 변화에는 당헌개정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앞서 법원은 8월 26일 1차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당의 비상상황 유권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에 국민의힘 전국위원회는 9월 5일 비대위 출범 요건이 되는 ‘비상상황’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비한 당헌개정안을 의결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종전에 해석에 여지가 있던 불확정 개념인 ‘비상상황’을 배제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요건을 정한 것”이라며 국민의힘의 당헌개정은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바뀐 당헌에 따른 비상상황 의결 및 비대위 출범, 비대위원장‧비대위원 임명 절차에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국민의힘은 법원 결정을 환영했다. 정 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이제 집권 여당이 안정적인 지도체제를 확립하고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튼실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며 “지도부가 안정을 되찾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이 전 대표는 정진석 비대위 구성이 완료된 9월 13일자로 당대표직을 상실하게 됐다.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선례도 적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얽힌 정당에 관한 가처분 재판을 맡아온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의기 있는 훌륭한 변호사들과 법리를 갖고 외롭게 그들과 다퉜고, 앞으로 더 외롭고 고독하게 제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윤리위로부터 당원권 정지 1년의 추가 징계를 받으며 당으로의 복귀마저도 더 미뤄지게 됐다.
이양희 윤리위원장은 6일 오후 7시부터 5시간 가량 국회에서 윤리위 전체회의를 연 뒤 기자들과 만나 “윤리위는 이 전 대표에 대해 지난 7월 8일 결정된 당원권 6개월 징계에 추가해 당원권 정지 1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의 당원권 회복 시점은 애초 내년 1월 9일에서 2024년 1월 9일로 미뤄졌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힘은 지난 8월 30일 의원총회를 개최해 새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당헌 개정안이 당론으로 결정됐는데, 이에 반해 (이 전 대표가) 당헌 개정과 새 비대위 구성 저지를 위한 가처분신청을 한 것이 (추가 징계의) 핵심 이유”라고 설명했다.
앞서 윤리위는 지난달 18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해 ‘양두구육’ ‘신군부’ ‘개고기’ 등의 표현을 쓴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윤리위는 회의 결과 보도자료에서 ‘당 소속 의원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욕적이고 비난적인 표현을 사용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국민의힘 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내 혼란을 가중시키고 민심 이탈을 촉진시킨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윤리위가 구체적인 비위행위에 대해 적시하지 않고, 유령징계를 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이날 윤리위 회의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법원과 윤리위 결정으로 국민의힘은 지난 7월 8일 이 전 대표 징계 이후 지도부 체제 전환 과정에서 겪은 대혼란을 수습할 계기를 맞게 됐다. 차기 전당대회 시점을 둘러싼 논의도 서서히 달아오를 전망이다.
정현수 박세환 손재호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