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네 발]은 동물의 네 발, 인간의 발이 아닌 동물의 발이라는 의미입니다. 도심 속에서 포착된 동물의 발자취를 따라가겠습니다.
1993년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간 진돗개 ‘백구’가 300여㎞를 달려 몇 달 만에 주인 할머니에게 돌아와 화제가 됐다. 백구는 광고, 애니메이션, 게임까지 출연하면서 스타가 됐다. 언론은 ‘저 흰 개는 우릴 부끄럽게 한다’고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그런데 백구에게는 숨겨진 진실이 있었다. 백구는 사실 식용으로 팔려간 도태견이었다.
진도군에서 태어난 개가 심사를 통과하면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도개’로 인정받아 관리 대상이 된다. 그런데 심사 기준이 모호하다. 진도군청 홈페이지에 기재된 표준체형은 민첩한 외모, 알맞은 조화’ 등 추상적인 문구가 대다수다. 사람이 보기에 외형적으로 못생겼으면 통과할 수 없다. 같은 모견에서 태어난 형제의 결과가 다를 수 있다. 통과하지 못한 개체는 도태견 판정을 받는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돗개다. 심사견의 90% 정도만이 심사를 통과하는데, 백구는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개는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한국진도개 보호·육성법’(이하 ‘진도개법’) 제 8조1항에 따라 중성화를 하거나 진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대부분이 진도 밖으로 나가서 애완견이 되거나 백구처럼 식용으로 팔린다. 이렇게 반출된 진돗개들 중 유기견이 되는 경우가 있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 관리시스템에는 9만4000여 마리의 유기견이 등록됐다. 이 중 진돗개가 5번째다. 한 동물보호단체 대표는 “구조되는 개의 90%가 진돗개 혹은 그 혼종”이라 주장했다. 시골이나 식용견 농장에서 기르다 버린 경우가 많다.
버려진 진돗개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어렵다. 덩치가 크고 성격이 사나운 진돗개의 특징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버려진 진돗개의 입양률은 5%에서 8% 정도다. 입양되지 못해 안락사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천연기념물 진도개 역시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 작년 8월 31일 전남 진도군에 있는 한 식용견 농장에서 네 마리의 진도개가 발견됐다. 천연기념물임을 증명하는 전자 칩이 몸 안에 있었다. 농장주는 “식용으로 사육하던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진도개와 식용견은 같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천연기념물을 관리해야 하는 문화재청과 진도군은 제보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 이는 관련 법률의 맹점이 빚어낸 사고였다.
진도개법은 등록만을 규정한다. 등록 이후에는 보호자의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추적 관리를 하지 않는다. 동물보호법에는 반려견의 소유주가 바뀌면 이를 신고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그러나 진도개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진도개로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 처벌할 규정 역시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진도개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해당 법은 1967년 제정됐다.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쳤으나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 법 제목에는 ‘보호’가 들어가 있지만 15개의 법령 중에서 개를 위한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동물복지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법 대신 체계적으로 진도개와 진돗개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문화재청은 진도군의 인력 부족으로 사후관리를 할 여력이 없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빠르게 진도개법 개정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 지난 9월 29일 국회에서 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곧 법에 복지 관련 내용을 넣는 등의 정비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얼마나 많은 진돗개가 사라져갔을까. 이제는 진돗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진도개와 진돗개 모두가 복지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줄에 묶여 있거나 우리에 갇혀 있는 모습이 아닌,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진돗개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유승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