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갑’ 애플의 굴욕… 납품가 인상, 충전단자 규제 수용

입력 2022-10-05 16:05
서울 강남구 애플스토어 가로수길점 모습. 뉴시스

‘슈퍼 갑’으로 불리는 애플이 잇따라 자존심을 구기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TSMC와 3나노 공정의 생산가격 인상을 두고 신경전을 펼쳤지만, 결국 TSMC 요구를 받아들였다. 사실상 애플의 패배다. 여기에다 유럽연합(EU)의 ‘충전단자 단일화’ 움직임에 못 이겨 그동안 고수하던 ‘자체 규격’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됐다.

5일 대만 이코노믹 데일리뉴스 등에 따르면 최근에 TSMC는 8인치 칩 웨이퍼 가격을 최대 6%, 12인치 칩 웨이퍼 가격을 최대 5% 인상할 계획이라고 애플,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통보했다. 애플은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결국 애플에서 TSMC의 가격 인상안을 수용했다고 알려진다.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로부터 물량을 받는 ‘을’이다. 다만 TSMC 위상은 ‘슈퍼 을’에 가깝다. 고객사에 따라 협상 여지가 어느 정도 있지만, TSMC에서 가격 결정권을 강하게 쥐고 있다. 파운드리 캐파, 첨단공정 기술력 등에서 경쟁업체가 거의 없는 선두기업이기 때문이다.

‘슈퍼 갑’에 가까운 애플은 버텼다. TSMC 매출의 25%를 애플이 차지하고 있어 TSMC로서도 무작정 압박을 가하기는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두 회사의 갈등이 장기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애플에는 TSMC를 대체할 기업이 없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가격 협상이 길어지면 애플의 차세대 칩셋 출시 일정이 밀릴 수 있다는 점도 애플에 불리한 요인이었다. 결국 가격 줄다리기는 TSMC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또한 애플은 ‘충전단자 단일화’ 움직임에 저격을 당했다. EU 의회는 4일(현지시간) 안드로이드 기반의 USB-C 커넥터를 2024년 말까지 EU 역내 표준 충전단자로 통일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각각인 충전 규격 때문에 불필요한 충전기들이 서랍에 잔뜩 쌓여있고,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는 게 입법 이유다.

IT 업계에서는 이 법안을 ‘애플을 겨냥한 규제’라고 판단한다. 세계 스마트폰 업체 가운데 애플만 유일하게 자체 규격인 ‘라이트닝 포트’를 사용하고 있어서다.

EU의 법안 통과로 애플은 당장 내년에 출시하는 아이폰15 시리즈부터 충전단자를 라이트닝 포트에서 USB-C 타입으로 변경할 전망이다. 애플은 2012년 9월 아이폰5를 내놓으면서 라이트닝 포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후 맥북과 아이패드의 경우 충전단자를 USB-C 타입으로 바꿨지만, 아이폰에서는 라이트닝 포트를 고집해왔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