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출작인데 본선에 진출할 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좋은 결과가 있어 기쁘고 여전히 얼떨떨합니다.”
제5회 전주국제단편영화제에서 작품 ‘마흔 세 번째 여름’으로 전북경쟁 부문 콩나물상을 받은 박소현(23) 감독은 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상은 시작하는 영화인에게 준 응원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연출한 ‘마흔 세 번째 여름’은 치매라는 현실 속에도 변함없는 사랑을 나누고 있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작품은 무거운 주제를 7분 10여초의 영상에 산뜻하고 담담하게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마흔 세 번째’는 노부부가 함께 살아온 시간을 뜻한다.
특히 박 감독은 올해 영화제 55명의 상영작 감독 가운데 유일한 여대생 감독으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 전주대 영화방송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다.
그는 동료 학생 11명과 함께 2개월의 준비 끝에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 전주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빌려 이틀간 촬영했다.
시나리오는 박 감독이 4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병환중이던 할머니를 극진히 간호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썼다.
“당시 할머니께서 댁과는 먼 곳에 있는 병원에 계셨는데, 할아버지가 그런 할머니를 보기 위해 매일 아침 첫 버스를 타셨어요. 영화 속에 ‘비가 그치면 같이 꽃 구경 가자’라는 대사가 있는데, 두 분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요.”
그러나 날씨 때문에 꽤 고생을 했다.
“햇볕 쨍쨍한 날, 고창 청보리밭에서 촬영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장마가 일찍 시작되는 바람에 촬영 하루 전 시나리오와 콘티를 상당 부분 고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배경을 바꾼 것이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됐다. 카메라를 한 가정으로 옮기니 주제가 더욱 선명해졌다.
박 감독은 “저만 빼고 동료들 모두 비를 쫄딱 맞으며 촬영에 임했다”며 스태프들에게 큰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덥고 습한 데다 궂은 빗방울까지 내려 다들 힘들었을 텐데, 불평 한번 없이 도리어 절 걱정해줬다”며 “기꺼이 도와주고 응원해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더불어 연기를 해 준 노배우들께도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중후한 연기는 물론 나이스한 품격으로 젊은 스태프들을 존중하며 격려해 줬다는 것. 나아가 그는 “아역배우 이초아 양도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큰 디렉팅 없이도 멋지게 연기해 주었다”며 “다음 작품에도 함께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1학년 때부터 촬영과 조명, 미술 등의 분야에서 선배들 작품 30여 편에 참여하는 열정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제1회 전주영화인상 시상식에서 미술 분야로 기술창의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학과 과제로 만들었어요. 이를 본 서울의 배급사 삼일오 스튜디오에서 영화제에 출품해 보자고 해서 용기를 냈었습니다.”
데뷔작으로 큰 주목을 받은 박 감독은 “요즘 한창 졸업 작품 제작에 바쁘다”며 “앞으로 어느 일을 하게 되든 영화 현장 속에 늘 있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2018년 출발한 전주국제단편영화제는 올해 5번째 잔치를 펼쳤다. 문화콘텐츠연구소 시네숲이 주최하고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조직·집행위원회가 주관했다.
지난 달 29일 시작해 3일까지 진행된 이번 영화제엔 106개국에서 3965편의 작품이 접수되는 성황을 이뤘다. 이는 지난해보다 10%가량 늘어난 수치다. 부문별로는 국제경쟁 3215편, 국내 경쟁 722편, 전북지역 경쟁 28편이다. 이 가운데 55편이 5일간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맞았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