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도 안 되는데” 판사님들 ‘늑장 재판’…워라밸 영향도

입력 2022-10-03 18:36 수정 2022-10-03 19:55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국 1심 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음에도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형사 재판부는 올해 상반기 전국 1심 법원 중 사건 처리에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민사 1심 재판부에 접수된 사건은 81만4000여건으로 2017년 101만7000여건 접수 이후 매년 감소했다. 접수 건수는 줄었지만 1심 선고까지 평균 처리 기간은 2017년 평균 4.8개월에서 지난해 5.8개월로 매년 늘었다. 올 상반기에도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이 5.9개월로 늘어났다.

형사 1심 재판부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전국 형사 1심 재판부에 접수된 사건은 22만6000여건으로 전년(26만여건) 대비 3만여건 가까이 줄었지만 사건 처리 기간은 오히려 5.2개월에서 5.9개월로 늘었다.

오래된 장기 미제사건 비율이 높을수록 낮은 수치를 보이는 미제분포지수도 올 상반기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심리기간 2년 초과 사건들이 쌓일수록 지수가 급격히 낮아지는데, 전국 민사 1심 재판부 미제분포지수는 2017년 80.0을 시작으로 계속 감소해 지난 6월 기준 63.6을 기록했다.

형사 1심 재판부 역시 2017년 80.4를 시작으로 계속 감소해 66.0까지 떨어졌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6월 기준 26.1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방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어렵고 복잡한 사건은 회피하고 눈앞에 쌓이는 쉬운 사건들부터 먼저 처리하는 경향까지 생겨나면서 장기 미제사건이 적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동기부여를 위한 인사제도의 부재를 ‘늑장 재판’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가 실질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예전엔 지법 부장판사들이 어려운 사건을 맡아 사건을 빨리 떼고 성과를 내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법원 문화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는 이도 있다. 주 52시간제 정착, 아이 양육을 부모가 함께 책임지는 사회 변화 등으로 법원도 장시간 업무에만 몰두하도록 하거나 야근을 강제하는 일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회 전 분야에서 전자기록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재판부에 제출되는 기록과 증거의 양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수도권 지역 고법 판사는 “판사 수를 늘리는 게 가장 쉽고 좋은 해결책일 수 있겠지만 특정 직군을 늘리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영미권은 판사가 모든 사건을 처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 외 대체적분쟁해결제도(ADR)나 본안 재판 전 소송을 하는 쌍방 당사자들이 증거조사를 진행하는 디스커버리 제도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형민 양민철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