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의사부족 심각…대리처방 탓 항암제 2배 먹기도”

입력 2022-09-30 16:57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이 30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사무실에서 열린 의사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의료 현장에서 의사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정원 대비 현원이 100명 넘게 부족한 의료기관도 있고, 상당수 의료기관은 진료보조인력(PA)을 통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취지다. 원인으론 17년간 늘어나지 않은 의대 정원이 꼽혔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30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체 실시한 의사 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부 99곳이 각 사업장(의료기관)을 상대로 지난달 16일~이달 2일 시행한 조사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노조는 조사에 응한 의료기관 대부분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국립대병원에서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모 국립대병원에선 실제 근무 중인 의사 수가 정원보다 106명이나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공병원이나 지방의료원도 동일한 문제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특수목적 공공병원의 의사 현원은 정원 대비 54명 적었다.

조사 대상 의료기관 중 적잖은 수는 진료 공백을 메우고자 PA에 의존했다. 해당 조사에 응한 사립대병원 27곳은 평균 78명, 국립대병원 9곳은 평균 74.5명의 PA를 뒀다. 단일 의료기관으로 PA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200명의 인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는 이 같은 인력 구조가 대리수술 등 불법의료행위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수술·시술·처치 등 의사의 고유업무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이 대리하는 의료기관이 95개 의료기관 중 60개(63.15%)나 된다는 것이다. 의사 대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도 97개 중 73개(75.25%) 의료기관에서 이뤄졌다.

의사 부족이 실제 진료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진료과별로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순으로 의사 인력 부족 때문에 진료가 원활하지 않다는 응답이 많았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지방의료원이 호흡기 전문 의사를 구하지 못하거나, 재활에 특화돼야 할 근로복지공단병원에 재활의학과 의사가 부족한 등의 문제도 파악됐다.

조사에 응한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의사 부족의 여파가 환자와 의사, 현장 노동자 모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술 보조 이상의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봉합은 기본’이라거나 ‘PA가 대리처방을 잘못해 환자가 항암제를 2배로 먹게 된 적 있다’는 등의 고발이 잇따랐다.

노조는 날로 늘어가는 의료수요에 비해 의사 공급은 20년 가까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며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대 정원은 17년째 3058명에 동결돼있다”며 “이 수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한국 의료에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