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여아 연쇄강간범’ 신상공개 재점화… 실현 가능할까

입력 2022-09-24 00:01

10세 여아 4명을 성폭행하고 1명을 강제추행한 이모(47)씨의 신상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글이 주목받으면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성범죄)자의 신상공개 확대 논란에 불을 지폈다.

현행법에 따르면 2008년부터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저질러 유죄가 확정된 경우에 신상정보를 공개·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씨는 그 전인 2006년 7월 형이 확정됐다.

국회에는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2000년 7월~2008년 4월 유죄가 확정된 경우까지 신상정보 등록 및 제출 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2020년 12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으나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행 ‘성범죄자 알림e’ 제도에 따르면 신상정보 공개 대상은 2008년 2월 4일 이후로, 고지(우편·모바일) 대상은 2008년 4월 16일 이후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범하고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로 제한된다.

여론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확대에 우호적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법조계 안팎에선 ‘의미가 있지만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앞서 법무부·법원행정처·여성가족부 등은 인권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신중 검토’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위헌 소지가 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온다.

“2008년 전까지 확대”에 법무부·법원 “공감하지만…”

신상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에는 최근 출소한 사람 중 재범 가능성이 큰데도 제도 공백 탓에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존재한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지난해 4월 출소한 이씨가 이 같은 경우다. 이씨는 2004년 11월~2006년 4월 범행을 저질렀고 2006년 7월 형이 확정됐다. 현행법상 신상정보 공개 대상이 되기 전 시점이었다.

앞서 온라인에서는 이씨의 잔혹하고 지능적인 성범죄 사실이 상세히 적힌 판결문이 공개돼 공분을 일으켰다. 중고차 딜러였던 이씨는 “차 의자에 뭔가 끼여 고장 났는데 도와달라”는 식으로 10세 아동들을 유인해 성폭행하는 수법을 반복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매우 교활하고 잔인하다”고 판시했다.

최 의원은 개정안을 제안하면서 “(현행법상) 2008년 4월 16일 이전에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는 신상정보 등록 및 제출의무 대상자에 포함하지 않아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최 의원 법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 검토보고서에는 “아동·청소년 보호를 강화하려는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이 가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약 20년 전 유죄판결이 확정된 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소급해 등록하는 것으로, 그 불이익이 과도하면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 신뢰 보호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는 부정적 의견이 적혔다.

관계기관 의견은 모두 “신중 검토”였다. 법무부는 “이미 형벌의 집행이 완료됐을 가능성이 크고 재범 없이 혼인 또는 직장 생활 하는 등 원만히 사회에 복구했을 수 있음에도 이런 고려 없이 2000년 7월 이후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일률적으로 신상정보를 등록하는 건 인권침해 우려가 크고 법적 안정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신상정보 등록 및 공개제도를 이미 범죄에 대한 국가의 제재가 확정된 경우까지 소급해 확대하는 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 등으로 위헌 여부가 문제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여성가족부도 “소급적용은 신뢰 보호 원칙 등을 감안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 “위헌 소지 크다… 실효성 떨어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개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거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현행 신상공개 제도를 개선하거나 재범 가능성이 큰 성범죄자 사후관리에 힘을 쏟는 등의 실질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2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 법안은 소급입법이기도 하고 다소 지나치다고 본다”며 “현행법과 제도 범위 내에서 경찰이 주의할 인물을 집중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실현 가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의 경우 이중처벌로 보지 않아 소급적용이 가능한데, 신상공개도 동일한 차원에서 법이 통과되면 소급적용이 가능하긴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성범죄자 신상공개·고지와 전자발찌 제도 모두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중처벌 금지는 동일한 범죄에 대해 국가가 형벌권을 거듭 행사할 수 없다는 헌법상 원칙이다.

다만 승 연구위원은 “이 경우 그동안 신상 공개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연히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게 될 것”이라며 후폭풍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승 연구위원은 개정안에 대한 찬반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왼쪽 사진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의자 전주환(31)이 지난 21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는 모습에 찍힌 실제 얼굴 모습. 오른쪽은 서울경찰청이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공개 결정한 전씨의 얼굴 사진. 전문가들은 일반인이 두 사진을 비교해 실제 인물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DB, 경찰청 제공

현행 신상정보 공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 교수는 “현행은 ‘머그샷’이 아니라서 얼굴 식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사진으로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현행 제도는 행정동 단위 수준으로 성범죄자 거주 지역을 공개하는데 동이 얼마나 큰 단위냐”라며 “미국 일부 주에서는 성범죄자 집 앞에다 신상공개 대상이라는 표지를 붙이는 경우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성범죄자 알림e 상 조건검색은 읍·면·동 단위 또는 도로명주소까지 가능하다.

승 연구위원도 “당장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저지른 전주환도 신상공개 사진과 실제 모습을 보니 전혀 다르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신상공개 소급적용은 가능하긴 하지만 범죄자 아닌 시민들이 알아서 피해야 하는 소극적인 미봉책”이라며 “국민이 매번 국가에 ‘신상정보를 공개 해달라’고 매달리게 하는 건 문제가 크다”고 했다.

나아가 승 연구위원은 “재범의 위험성이 큰 아동·청소년 성범죄자의 경우 치료 처우 차원에서 보호감호나 치료감호 등의 적극적 조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낮에는 일상을 보내고 저녁에는 시설에 가는 미국식 ‘하프웨이 하우스’(지역사회전환시설·Halfway house)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됐다”며 “국회에서도 ‘성범죄자 알림e’를 넘어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아성기호증 치료감호 확대’ 입법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소아성기호증 아동성범죄자 치료감호 확대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법무부는 지난 22일 소아성기호증 아동 성범죄자 치료감호 확대를 위한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재는 소아성기호증 등 장애가 있는 성폭력 범죄자는 항소심 변론 종결까지 검사의 청구가 있으면 최대 15년간 치료감호에 처할 수 있다. 살인 범죄자의 경우 매회 2년·최대 3회까지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개정안은 13세 미만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전자 감독 대상자 가운데 재범 위험성이 높고, 준수사항 위반 전력과 소아성기호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청구 기간 이후에도 사후 치료감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때 재범 위험 가능성이 높은 소아성애 아동성범죄자는 기간 연장의 횟수 제한이 따로 없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