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기가 장관·총장인데”… ‘젊은 검찰, 늙은 법원’이 낳은 기수 격차

입력 2022-09-21 06:30
이원석 신임 검찰총장(왼쪽)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방문해 김명수 대법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정부 첫 검찰 수장에 이원석(53·사법연수원 27기) 검찰총장이 오르면서 검찰과 법원 간 ‘기수 격차’ 현상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한동훈(49) 법무부 장관과 연수원 동기인 이 총장은 김명수(63·15기) 대법원장을 비롯해 현 정부가 지명한 오석준(60·19기) 대법관 후보자와도 10기수 안팎의 차이가 있다.

통상 검찰보다 법원 기관장의 연수원 기수가 더 높았지만, 문재인정부 이후 검찰 지휘부 연소화가 계속되면서 검찰과 법원 사이의 기수 격차가 이례적으로 벌어지게 됐다. 한 고법 판사(지법 부장판사)는 21일 “판사들끼리 ‘검찰로 간 동기는 지금 장관, 총장이 됐는데 우린 매일 야근하며 재판 기록만 본다’는 농담도 한다”고 전했다.

검찰 조직 연소화는 지난 정부 시절 윤석열(62·23기) 대통령에 대한 거듭된 ‘파격 인사’가 주요 계기였다. 윤 대통령이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2019년 검찰총장으로 기수를 뛰어 넘는 고속 승진을 하자 검찰 내 ‘용퇴’ 관례에 따라 선배·동료 기수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여기에 지난 5월 한 장관 취임 이후 단행된 검찰 정기 인사에서 수뇌부 쇄신이 단행되면서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에 김선화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이 30기 기수에서 첫 발탁되는 등 기수 파괴가 이어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으로 치면 임원급의 ‘파격 승진’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법원은 ‘평생법관제도’로 정년인 65세까지 법복을 입는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원로법관제’와 ‘법원장 순환보직제’를 도입하면서 대법관에 오르지 못한 법원장도 하급심에 복귀해 정년까지 재판을 하고, 법원장도 임기를 마치고 일선 재판부의 장으로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됐다.

10년 이상 법조경력자 가운데 법관을 임용하는 ‘법조일원화’와 연륜이 비슷한 판사들이 합의부 재판을 진행하는 ‘대등재판부’까지 활성화되면서 일선 법원은 상대적으로 고령화됐다는 시각이 있다. 한 서울의 부장판사는 “검찰은 40대 검사장이 수사 지휘하고, 법원은 50, 60대 판사들이 돋보기안경 쓰고 기록 보는 게 현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휘부 연소화에 직면한 검찰의 고심도 가볍지 않은 상황이다. 이 총장이 취임하며 공석이 된 대검 차장검사와 서울고검장·법무연수원장 등 지휘부 공백 상황을 해소해야 하는데, 내년 초 정기 인사를 앞둔 상황에서 인선이 마땅치 않다는 시각이 많다. 검찰 내부에선 정기 인사 때까지 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지휘부 공백을 감안해 소폭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고검장 자리에 거론되는 28~29기 검사들이 이미 주요 검찰청을 이끌고 있는 데다, 한 자리라도 뺄 경우 연쇄 인사가 불가피해지면서 소폭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총장 등 검찰 지휘부는 법조계를 넘어 사회 원로에 가까운데, 조직 연소화가 부담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국민 시각에선 기수보다 검찰과 법원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지 더 주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