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직격탄 맞은 30대, 자살 상담 급증…상담 비중 20대 제쳐

입력 2022-09-19 15:17 수정 2022-09-19 15:41

30대의 자살 상담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려졌던 취업난의 현실화, 글로벌 긴축에 따른 투자 실패와 대출 부담 등 복합적 경제난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리오프닝 국면을 맞아 각종 코로나19 지원책 착시 효과가 사라지면서 30대가 경제 악화 충격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30대의 심리상담(마음이음 상담) 건수는 2018년 5455건, 2019년 5009건, 2020년 4788건으로 줄다가 2021년 7511건으로 56.9%나 급증했다. 상담 건수가 적은 10대가 2020~2021년 514건에서 852건으로 65.8% 오른 것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전체 상담 건수 대비 연령별 비중도 30대는 2020년 21.0%로 20대(25.0%)보다 낮았지만 지난해 26.0%로 껑충 뛰어오르며 순위가 역전됐다.

전체 심리 상담 가운데 자살 위험이 큰 것으로 분류된 자살 상담 건수를 보면 30대는 2018년 1698건, 2019년 1903건에서 2020년 1596건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된 2021년 30대는 타 연령대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2020~2021년 자살상담은 주 자살위험군인 20대(2664건→2118건), 40대(1693건→1357건), 50대(1503건→1170건)에서 감소했다. 10대만 253건에서 347건으로 늘었고, 60대는 510건에서 516건으로 보합세에 그쳤다. 반면 30대는 자살 상담이 1873건으로 17.4%나 늘어났다.

올해 7월까지 심리 상담 통계를 살펴봐도 30대가 5055건으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20대(3836건), 50대(3659건), 40대(3311건) 등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 살펴보면 30대는 남성에서 25.3%, 여성에서 27.7%를 차지하며 각각 가장 많은 비중을 기록했다.


2021년 갑자기 늘어난 30대의 자살 상담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은 경제적 이유를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자살 사망자에 대한 심리 부검을 진행하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관계자는 19일 “30대의 경우 ‘코로나19로 취업난이 가중됐다’는 식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나 코로나19 여파가 잦아들면서 본격적으로 경제적 압박을 받는 처지가 됐다”며 “이런 부담감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예도 있다. 주변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진희 대구대 교수는 “국민정신 건강 실태조사를 보면 30대는 코로나19 이후 꾸준하게 정신 건강이 안 좋은 연령대”라며 “이같은 정신 건강 고위험군엔 실직, 소득감소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목적으로 떠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조유나양 일가족 역시 조양의 30대 부모가 주식과 암호화폐 등에 투자했다가 1억원 이상 금융권 빚을 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5월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1분기 자사 투자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30대가 44.8%로 가장 많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 대출자의 소득대비대출비율(LTI)도 280%에 달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만큼 금리 인상기 경제적 타격에도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세대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등 재난 상황에선 자살률이 낮아지지만 재난 후 사회가 안정적으로 변했을 때 심리적인 문제로 자살 충동을 호소하거나 직접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자살 상담의 대다수는 경제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분들”이라고 전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30대는 부동산이든, 암호화폐든, 주식이든 ‘영끌’ 투자에 많이 참여한 세대”라며 “정부 차원에서 상담 강화 등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살 상담 전화는 ‘통화 중’

3년여간 지속한 코로나19로 인해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자살 상담 전화도 폭증하고 있다. 상담수요는 늘어나는데 상담원은 부족하다 보니 상담 응대율도 60%대까지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전보 전달 경로를 개설해 단순 문의를 줄이고, 상담원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자살 상담 전화는 코로나19가 발발한 2019년부터 증가 추세다. 총 상담 건수는 2019년 2만1642건에서 2020년 2만2962건, 2021년 2만9121건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상반기 기준 1만6559건으로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48건(16.5%)이나 늘었다.

자살 상담이 늘어난 데다 코로나19에 대한 단순 문의까지 더해지며 자살예방센터에 과부하가 걸리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일반 정신건강 상담 전화는 물론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정신건강 상담 전화를 전국 공통인 1577-0199로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지역 거주민의 경우 이 전화가 서울시 자살예방센터로 연계되기 때문에 실제론 코로나19 정신건강 상담까지 담당하게 됐다. 시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질병관리청이 연락이 안 된다거나 확진 시 행동요령 등을 물어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최근에는 백신 이상 반응을 신고하신 분들도 인입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담 응대율은 2018년 시간대별 평균 79.5%에서 지난해 66.9%까지 떨어졌다. 이럼에도 센터의 상담 응대 인원은 정원인 18명도 다 채우지 못한 15명에 불과하다. 시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2020년 상담원 정원이 10명이었는데 올해 18명까지 늘렸지만 아직 다 뽑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시도 상담사 교대근무를 2교대에서 3교대 근무로 변경하고, 상담사 인력을 증원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을 진행 중이다. 내·외부 교육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등 처우 개선에도 나섰지만 서울시 사회복지사협회 임금체계를 따르다 보니 격무에도 별다른 인센티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6년 서울시 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자살예방센터가 분리되면서 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주 업무였던 정신건강 업무까지 넘어오는 바람에 업무 부담도 늘어났다. 주상현 보건의료노조 서울시 정신보건지부장은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자살예방센터가 분리됐지만 상담 업무는 여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자살예방센터는 자살 위기 상담을 해야 함에도 단순 코로나19 상담까지 몰리는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업무도 분리돼야 하고, 감염병이나 재난 관련 전화는 자살 상담 전화와 분리해 별도 경로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진희 대구대 교수도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불안이나 두려움처럼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사실 상담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처럼 국민이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해 불필요한 상담 건수를 줄여야 한다”며 “정신 건강 상담의 경우엔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준구 김이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