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이어진 광주시와 전남 화순군 사이의 ‘적벽(赤壁) 대전’이 올해 안에 마침표를 찍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광주시가 상생발전 차원에서 적벽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망향정 일원 관리권을 화순군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9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2월부터 화순군이 요청해온 망향정 인근 5㎞ 구간에 대한 관리권을 이양하는 절차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민선 8기 들어 처음 열린 지난 7월 광주전남상생발전위원회에서 1971년 완공, 2년 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인 화순 동복댐 환경개선과 정비사업에 광주시와 전남도가 협력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붉은색의 수직 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화순 적벽은 1519년 기묘사화로 동복에 유배를 온 신재 최산두가 중국의 적벽과 버금간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였다.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은 적벽의 황홀한 풍경에 반해 특유의 방랑벽을 잠재우고 13년간 머물며 수많은 시를 남겼다. 이곳을 떠나지 않은 그는 화순군 동복면 구암에서 생을 마쳤다.
다산 정약용(1762~1836) 등 많은 문인도 ‘천하제일경’이라고 앞다퉈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화순 적벽은 행정구역상 화순 이서면 630-1번지다. 이서면 창랑리와 장학리 일대에 걸쳐 있다. 동복천 상류 수역의 깎아지른 절벽 곳곳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등의 자태가 아름답고 인접한 옹성산·동복호 등의 수려한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17년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112호로 지정받았다.
광주와 화순 접경지역의 적벽을 화순 제1경으로 지정한 화순군은 한동안 일반인 출입을 막아온 이곳의 절경을 마중 편 망향정 등에서 둘러보는 2~3시간 코스의 ‘설렘화순 버스투어’를 2015년부터 운영 중이다. 화순의 대표적 관광자원으로 널리 활용 중이다.
하지만 상수원보호구역 지정과 더불어 망향정 일원을 광주시가 줄곧 관리하면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광주시는 “시민들이 먹는 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주요 식수원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며 관리권을 고수했다. 망향정 일원이 대부분 광주시유지라는 점도 작용했다.
화순군도 물러서지 않았다. 2003년 2월부터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와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환경부에 관리 주체 변경을 수차례 요청했다. 두 지자체의 대립 속에서 환경부가 화순군보다는 광주시가 관리하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환경부가 고심 끝에 광주시의 손을 들어줬지만, 화순군은 광주시에 다시 공문을 보내 동복댐 상수원보호구역 관리권을 넘겨달라고 요청하는 등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러다 2020년 집중호우 때 동복댐 수량을 원활히 조절하지 못해 화순 동복면 등 4개 지역 주민들이 고립되는 등 극심한 침수피해를 입게 되면서 관리권을 둘러싼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화됐다.
두 지자체는 ‘동복댐 상생협의회’를 출범해 뿌리 깊은 반목을 봉합하려고 나섰으나 지금까지 성과를 거두지 못해왔다.
1973년 화순군 동복·이서·북면 일원 1만 2656㎢ 구역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동복댐은 40여 년간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다가 지난 2014년부터 광주시와 화순군의 상생 합의에 따라 적벽을 볼 수 있는 망향정 일원을 개방하고 있다.
1981년과 1985년에 걸친 증축을 거친 동복댐의 저수 용량은 9900만t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상생발전위원회 협약서를 통해 협력을 약속한 만큼 화순 적벽 일대 관리권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화순군과 세부적 관리사항을 조율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