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스토킹 피해를 당한 끝에 살해되자 이런 참극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도, 수사기관의 엄정 대응 방침도 현실에선 무력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토킹 가해자 위치정보를 피해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등 피해자의 ‘생존할 권리’를 보장하는 적극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최근 스토킹 전조 증상이 있는 경우 계획 살인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배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팀이 2017~2019년 헤어진 연인을 상대로 발생한 살인(미수 포함) 사건 336건을 분석한 결과 스토킹 살인사건의 63.5%은 계획범죄였다. 일반 살인사건(21.4%)보다 월등히 높다.
이 교수는 18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스토킹 살인사건에서 계획범죄 비율이 특히 높기 때문에 피해자 안전조치에 더해 가해자 동선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 효과적”이라며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가해자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피해자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생존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계획범죄 비율이 높은 만큼 스토킹 피해자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가해자 위치 정보을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는 시간보다 이를 보호할 공권력이 늦어 희생된 생명이 많다”며 “수사기관이 스토킹 사건을 대할 때 스마트워치 신고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사건, 같은 해 12월 전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모친을 살해한 이석준 사건도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갖고 있었음에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최선의 분리조치는 가해자를 구금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재 수사기관은 스토킹의 지속성이 인정돼도 구속 수사에 소극적이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스토킹 재신고 건수(7772건) 중 구속 수사는 2.7%(211건)에 그쳤다. 법원이 영장 심사 시 ‘보복 우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승 연구위원은 “영장 발부 기준에 보복 우려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구속은 쉽게 하되 그 이후 위치 정보 제공 조건 보석 등으로 보완하면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명령제도’ 필요성도 거론된다.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수사기관 개입 없이 피해자나 대리인이 직접 법원에 100m 접근금지, 신변안전조치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는 “여성가족부가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입법을 예고했지만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이 빠져 있다”며 “수사기관 판단 착오로 가해자가 입감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사 등 피해자가 속한 기관에서 보호 체계가 미흡했단 지적도 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은 “이번 사건은 사내에서 스토킹이 벌어졌음에도 직위해제 조치만 했을 뿐 피해자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돼 사고로 이어졌다”며 “수사기관 이외에 피해자가 포함된 조직도 스토킹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