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광주 서구 모 아파트 단지 승강기에는 제7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명의의 안내문이 일제히 나붙었다.
‘학군과 버스노선이 좋고 지하철역, 대형 할인점과도 매우 가까운데 아파트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다. 이사를 하더라도 시세가 유지되도록 협조해달라’
동별 대표가 서명한 A4 1장짜리 안내문에는 “7억원 이하에 아파트를 절대 내놓지 말자”는 대표회의 ‘담합’과 ‘결의’가 담겨 있었다.
풍암지구 모 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요즘 이 아파트 부녀회 간부들은 단지 주변 공인중개사 사무소 유리창에 내걸린 매물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종전 시세보다 낮으면 해당 입주민을 직접 찾아가 제시한 가격을 올려 달라고 설득하거나 매물을 철회하라고 공인중개사를 압박하기 위한 이색 ‘부동산 투어’다.
직장 근무지 발령 등에 따라 급매물로 싼 가격에 아파트를 내놓은 주민에게 평소에는 잘 왕래하지 않던 이웃 주민이 초인종을 눌러 항의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가 뚜렷해진 이후 광주 도심 아파트 단지에서 이따금 찾아볼 수 있는 새로운 풍속도다.
주로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녀회가 주도하는 이런 일종의 아파트 가격 담합과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는 갈수록 잦아지는 추세다.
아파트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재산권 사수 차원의 자구책이지만 광주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은 수개월째 곤두박질하고 있다.
실제 광주 도심 곳곳의 아파트 매매와 전셋값 하락 폭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발표한 ‘9월 둘째 주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을 보면 광주의 평균 아파트 거래가격은 1주일 전보다 0.13% 하락했다.
지난 7월 셋째 주 내림세 전환 이후 거래마저 끊기는 ‘거래절벽’ 현상이 도드라지면서 8주 연속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광주의 강남’으로 꼽히는 남구 봉선동 진월동은 물론 서구 화정동 쌍촌동, 북구 문흥동 각화동, 광산구 신가동 우산동 가릴 것 없이 하락 폭이 커졌다.
자치구별로는 남구(-0.17%), 북구(-0.14%), 광산(-0.12%), 동구(-0.12%), 서구(-0.09%) 순이다.
잦은 금리 인상으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데다 광주권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만 1만5000여 가구에 달해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광주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담합에도 매매가격 하락과 거래절벽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며 “기존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서 전세를 헐값에 내놓는 일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