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지하철 역사에서 스토킹 피해자인 여성 역무원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이미 스토킹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으며, 1심 선고 하루 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고 경찰의 현장 대응 강화 방안이 잇따라 나왔지만 스토킹 피해자들이 보복 범죄로 희생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15일 살인 혐의로 전직 서울교통공사 직원 A씨(31)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전날 오후 9시쯤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을 순찰하던 피해자 B씨(28)를 뒤따라 들어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흉기에 찔린 B씨는 화장실 내 긴급호출 버튼을 눌렀고, A씨는 역사 직원과 시민에게 제압됐다. 뒤이어 도착한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B씨의 입사 동기로 과거의 신고에 앙심을 품고 살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지난해 10월 몰래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A씨를 고소했다. 당시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직위해제됐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지난 1월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A씨를 재차 고소했다. 경찰은 해당 고소건에 대해선 구속영장 신청이나 스토킹 범죄 피의자에 대한 잠정조치 등도 취하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이미 구속영장이 기각된 최초 고소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었다”며 “스토킹 혐의로 죄명을 다르게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B씨 유족은 “(B씨가) 경찰한테 보호요청을 한 뒤 자신이 보호받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범행 발생일은 A씨 재판 선고 하루 전날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B씨의 고소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재판까지 받게 되면서 원한을 품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정황을 봤을 때 보복성 범죄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A씨는 “오랫동안 범행을 계획해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토킹 신고에 따른 보복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김병찬이 자신을 스토킹으로 신고한 전 여자친구를 살해했고, 같은 해 3월에는 김태현이 스토킹 범죄 끝에 세 모녀를 살해했다. 경찰은 지난해 피해자 보호 방안 등이 담긴 ‘스토킹범죄 현장대응력 강화대책’을 발표했지만, 또다시 유사한 참극이 발생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하며 관계 부처에 신속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했다.
김판 양한주 김영선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