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가공식품 가격 줄인상이 시작됐다. 라면업계 1위 농심과 제과업계 1위 오리온이 15일부터 신라면, 초코파이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영향까지 받으며 제조 원가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식품기업들의 추가 가격 인상까지 전망되며 물가 상승 부담이 더해지고 있다.
초코파이·신라면·비빔면 가격 오른다
오리온은 이날부터 전체 60개 생산제품 중 파이, 스낵, 비스킷 등 16개 제품 가격을 평균 15.8% 인상한다. 주요 제품별 인상률은 초코파이 12.4%, 포카칩 12.3%, 꼬북칩 11.7%, 예감 25.0% 등이다.
편의점 기준 초코파이 한 상자(12개입) 가격은 4800원에서 5400원, 포카칩(66g)과 꼬북칩(80g)은 1500원에서 1700원으로 오른다. 오징어땅콩, 다이제, 고래밥, 닥터유 에너지바·단백질바, 마이구미 등 44개 제품의 가격은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오리온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유지류, 당류, 감자류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은 전년 대비 최대 70% 이상, 제품 생산과 물류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은 배 가까이 올랐다. 제조원가 급등 탓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오리온은 2013년 12월부터 약 9년 동안 제품의 양은 늘리고 전품목 가격은 동결해왔다. 식품업계에서는 10%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가격을 동결해오던 오리온마저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만큼 원가 상승 압박이 심각하다는 분위기다.
오리온은 향후 가격을 내릴 가능성도 공언했다. 오리온은 “원부자재 가격과 에너지 비용이 하향 안정화하는 경우 제품의 양을 늘리거나 제품 가격을 인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심은 지난달 말 신라면, 새우깡 등 주요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이날부터 라면류는 평균 11.3%, 스낵류는 평균 5.7% 오른다. 농심이 가격 인상 시점을 약 3주전 예고하는 상황도 이례적이었다. 올해 들어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민 식품인 라면 가격을 올리는 게 부담이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출고가 기준으로 짜파게티는 13.8%, 신라면은 10.9%, 너구리는 9.9%, 새우깡은 6.7%, 꿀꽈배기는 5.9% 오른다. 대형마트 평균 판매가격으로 보면 짜파게티는 개당 856원에서 974원, 신라면은 736원에서 820원, 새우깡은 1100원에서 1180원이 된다.
농심의 라면과 스낵 가격 추가 인상은 원가 상승 압박이 수익성 악화로 직결됐기 때문이다. 농심의 2분기 실적은 매출(연결 기준) 75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이 43억원으로 75% 줄었다. 국내에서는 영업손실이 30억원이었다. 농심이 국내 시장에서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은 24년 만이다.
팔도는 다음달 1일부터 12개 브랜드 라면 제품 가격을 평균 9.8% 올린다. 공급가 기준 팔도비빔면 9.8%, 왕뚜껑 11%, 틈새라면빨계떡 9.9% 등의 수준으로 인상된다.
식품업계 안팎에서는 농심이나 오리온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오뚜기, 삼양식품 등 라면업계 주요 기업들과 제과업계에서도 뒤따라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고환율’ 악재까지 덮쳤다
하반기 가공식품 가격 인상은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상반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상기후 현상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했던 게 국내에서는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밀, 팜유, 설탕, 버터 등 식품기업이 상반기에 구매한 원·부자재 가격은 통상 3~6개월 뒤에 반영된다. 지난 4월 급등했던 원·부자재 가격 인상은 하반기 원가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 구매한 원재료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되고, 결제 대금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시점의 환율로 적용된다. 환율이 계속 오르면 다른 인상 요인이 전혀 없어도 원재료 가격이 뛰는 현상이 빚어진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올해 원·달러 환율 상승이 상반기 소비자물가를 약 0.4%포인트 끌어올렸다고 추산했다. 상반기에만 원·달러 환율은 10%가량 올랐다. 14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년 5개월 만에 1390원을 돌파했고 14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기업들이 가격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 소비자 저항이 상당할 수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라며 “하지만 지금처럼 수익성 악화가 계속되면 임직원, 납품업체, 주주 등이 모두 악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차 인상을 심사숙고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