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레이엄 자서전’(Just as I am, 두란노)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그레이엄 목사의 일화다. 그레이엄 목사는 그의 자서전 제7부 38장 ‘반세기의 친구들’ 편에서 여왕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14일 자서전에 따르면 그레이엄 목사는 “여왕을 열두 번이나 만났다고 말하면 굉장히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열두 번은 4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라며 “나는 내가 무엇보다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대사임을 깊이 인식하지 않고는 중요 인물들 아니 그 누구도 절대 만나러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그러면서 “여왕과 왕실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저 몇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선 “여왕은 공식 직위상 우리 전도 대회 집회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환영하거나 윈저와 샌드링엄의 왕실 가족들의 몇몇 행사 때 내게 설교를 청함으로써 여왕은 우리 사역에 은근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며 “여왕은 내가 만나 본 사람들 가운데 세계 정세에 가장 밝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는 여왕이 정치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에 관해 언제나 매우 박학다식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레이엄 목사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처음 만난 것은 1955년 3월 21일부터 시작된 스코틀랜드 전도 대회 직후였다. 글래스고 집회는 6주간 계속됐는데 어느 집회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전도 대회의 반향은 커서 당시 BBC 방송은 십자가의 의미에 관해 그레이엄 목사가 준비한 특별 설교를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방송했다. 여왕의 대관식(1953년) 이후 단일 프로그램으로는 최고 청취율과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레이엄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여왕도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는 얘기를 우리는 후에 들었다. 이삼일 후 여왕의 시종 무관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 전도 대회가 끝난 다음 주에 윈저궁에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초청을 전해 왔다”며 “그러나 그는 이 약속을 비밀로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취소될 것임을 강조했다. 나는 루스에게만 말했다”고 회상했다. 앞서 그레이엄 목사는 1954년 런던에서 12주간 전도 집회를 열었고 200만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스코틀랜드 집회는 그 이듬해 열린 것이었다.
이렇게 여왕과 대면한 그레이엄 목사는 1984년 루스 사모와 함께 샌드링엄의 왕실 가족을 만난다. 그는 “우리는 낡은 우비와 장화 차림에 스카프를 맨 한 여자 앞을 지나갔다. 여자는 허리를 숙이고 개들에게 음식을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가정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자 다름 아닌 여왕이었다”며 “그날 방문을 마치고 막 떠나려는데 한 안내인이 우리 차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상자 하나를 들고 와, 우리를 태우러 온 친구 모리스 롤랜드슨에게 건넸다. ‘여왕께서 그레이엄 부부에게 드리는 꿩 한 쌍입니다’”라고 기록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여왕의 성경 사랑도 소개했다. “여왕은 언제나 성경과 그 메시지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어느 일요일 윈저에서 설교한 뒤 점심 식사 때 나는 여왕의 옆자리에 앉았다. 여왕에게 설교 본문이 막판까지 결정되지 않아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병자(베데스다 연못의 중풍병자)의 치유 기사에 관해 설교할까 하다 바꿨다고 말했다. 여왕은 이따금 곧잘 하듯이 눈빛을 반짝이며 흥분해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시면 좋았을 텐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랍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여왕이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모친인 엘리자베스 대비의 깊은 신앙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대비의 런던 저택인 클레런스하우스에서 여왕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대비는 우리 부부를 초청해 커피를 대접해 주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대비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마거릿 공주에게 소개했다. 우리는 그곳에 1시간쯤 있었다. 대비와 공주가 둘 다 아주 친절해서 5분도 되지 않아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대비는 조용하면서도 확고한 신앙으로 언제나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윈저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하던 때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대비가 다른 왕실 가족들과 함께 내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대비는 일부러 내 시선을 끈 뒤, 자신이 기도로 나를 돕고 있음을 살며시 몸짓으로 알려 주었다.”
그레이엄 목사는 왕실의 다양한 후원 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영국 왕실이 나에게 남긴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인상은, 그들이 수많은 자선단체와 사회 기관을 후원한다는 사실이다. 1966년 루스와 나는 마거릿 공주의 초청으로 바나도 박사의 보육원을 위한 런던 탑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극빈 아동들과 고아들을 돕기 위해 창설된 기관이었다. 우리는 얼스코트의 전도대회 예배를 마치고 곧바로 그리로 오던 길이었다.(그날 밤 집회에 알렉산드라 공주가 참석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우리 부부가 왜 초청됐는지 일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품위 있는 행사에, 내빈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런던 탑에서 자선 무도회가 열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곧 마거릿 공주와 스노든 경이 들어서자, 모든 사람이 기립했고 오케스트라는 특별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은 우리 테이블에 와 앉았다. 잠시 후 공주가 내게 바짝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엄 박사님, 내빈들에게 잠시 말씀을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런 일을 맡으리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지만 기꺼이 청을 수락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방금 전 토마스 바나도(더블린 태생 영국인 사회사업가로 보육원을 만들어 평생 10만명의 고아를 거리에서 구조하고 양육했다) 박사의 생애에 관해 읽은 뒤였다. 알고 보니 그 곳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 기관의 배경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바나도가 그리스도께 회심한 사연과 그것이 동기가 되어 보육원을 세운 내막을 들려주었다.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마거릿 공주가 친절하게 말했다. ‘우리가 꼭 들어야 할 내용이었어요.’”
그레이엄 목사는 사역 기간에 셀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절대 다수가 일반인이었다. 일부는 연예계와 재계, 정계의 유명 인사였다. 그는 세계 각국의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잘 알리지 않았고 오히려 경계했다. 유명인과 친분이 있다는 것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걸 꺼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서전에서 “내 시간의 98%는 대중의 시선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솔직히 나머지 2%에 대해 말하는 것이 썩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다. 유명 인사를 친구처럼 함부로 들먹인다는 비난을 사고 싶지 않다. 내가 대통령과 골프를 치거나 수상을 접견할 때,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 선수와 함께 있을 때마다 언론의 시선이 집중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