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재해 가해자라도 근로복지공단에 배상 책임 없다”

입력 2022-09-14 15:01 수정 2022-09-14 15:18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산재보험금을 지급하더라도 동료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국민일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금을 지급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와 관련해 가해자였던 같은 직장 내 근로자에게 보험금 구상권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지난달 19일 근로복지공단이 가해자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A씨의 직장 후배인 B씨는 2년 동안 A씨의 성희롱·성추행을 당하다 2017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B씨가 사망한 것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유족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이후 A씨에게 이 보험금을 배상하라며 구상금을 청구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제87조1항은 ‘공단은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에는 그 급여액의 한도 안에서 급여를 받은 사람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단은 B씨 사건에서 가해자인 A씨가 이 조항 속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이에 1·2심 재판부는 A씨를 ‘제3자’로 볼 수 있을뿐더러, A씨의 가해 행위처럼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큰 경우 동료 근로자라 할지라도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A씨를 ‘제3자’로 보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은 “동료 근로자에 의한 가해행위로 인하여 다른 근로자가 재해를 입어 그 재해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사업장이 갖는 하나의 위험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 위험이 현실화하여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대하여는 근로복지공단이 궁극적인 보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보험적 내지 책임보험적 성격에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산재보험법 87조1항에서 말하는 ‘제3자는 근로자와 산업재해보상보험 관계가 없는 자’로서 피해 근로자에 대하여 불법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이라는 2004년 판례에 따른 것이다.

숨진 B씨가 피해자이고 A씨가 가해자이긴 하지만, 근로복지공단과의 관계에서 두 사람은 모두 한 사업장이 가입된 산재보험의 보상 대상이므로, 이 재해에 대한 보상책임은 근로복지공단이 져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상 제도는 가해자 처벌·응징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1·2심이 근거로 든 사회적 비난 가능성의 기준도 모호해 예외를 인정할 경우 오히려 산재보험의 법적 안정성을 해할 수 있다”며 “이런 사정을 감안해 기존 판례 법리를 유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지영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