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에게 마약 먹이고 도박… 현실판 ‘타짜’ 일당 검거

입력 2022-09-13 11:33 수정 2022-09-13 14:11
현장에서 압수한 탄카드 묶음. 대전경찰청 제공

사회적 재력가들에게 접근해 마약을 먹이고 사기도박을 벌여 억대의 금품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사기 및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총책 A씨(51)와 B씨(47·여) 등 6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의 범행을 도운 4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건물주나 중견기업 대표, 일반회사 고위직 등을 꾀어 마약을 먹이고 사기도박을 벌이는 등 지난해 2월부터 지난 6월까지 총 1억5700여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와 B씨의 주도 아래 범행을 저지른 이들 일당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범죄조직처럼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이들 두 명이 범행 전반을 기획하면 나머지는 도박을 직접 하는 선수, 재력가를 섭외하는 모집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모집책은 주로 일이나 골프모임을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모집책이 “골프여행을 가자”고 피해자를 속이면 본격적으로 범행이 시작됐다. 골프모임에는 피해자를 포함해 총 8명의 남녀가 참여했다. 피해자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모두 공범이었다.

오후 무렵에 만나 골프를 치며 친밀감을 높인 이들은 저녁을 먹은 뒤 숙소에서 커피나 술 등을 마셨다. 이때 피해자가 마시는 커피나 맥주에는 필로폰 등의 마약류 약물이 들어있었다. 피의자 중 한 명이 도박을 하자고 바람을 잡으면 본격적인 도박판이 열렸다.

피의자들은 역할에 따라 좌석을 배치하고 이따금씩 약속된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승부를 조작했다. 카드의 배열을 미리 짜둔 ‘탄’ 카드를 사용하기도 했다. 도박을 할 줄 모르는 피해자들에게는 비교적 쉬운 도박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포커 등의 게임을 권유하기도 했다.

피의자들은 처음엔 돈을 잃어주며 피해자를 안심시켰다. 공범 중 한명이 일부러 돈을 모두 잃은 뒤 총책에게 “계좌이체 해줄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총책은 미리 준비해 둔 돈을 빌려주는 시늉을 했다.

마약때문에 판단력을 잃고 점점 크게 베팅을 하던 피해자가 돈을 모두 잃으면 피해자도 총책에게 돈을 빌린 뒤 계좌이체를 했다. 실제로는 피해자만이 총책에게 돈을 입금한 셈이었다.

이 같은 수법으로 한 피해자는 이들에게 5000여만원까지 뜯긴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등의 범행은 한 피해자 지인의 제보로 덜미가 잡혔다. 피해자를 설득해 즉시 간이검사를 실시, 마약반응을 확인한 경찰은 이들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난 6월 3일, 충북 보은의 한 민박집을 급습해 또 다른 피해자와 도박을 하던 이들 일당을 붙잡았다.

경찰이 피의자들의 은행 계좌내역을 조사한 결과 총 7명이 동일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자신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사실조차 전혀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피해자들이 투약한 마약의 양이 중독될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김재춘 대전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장은 “아직까지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며 “골프장 주변에서 활동하는 사기도박단을 대상으로 단속활동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