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 간판스타 김미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김용걸. 둘은 한국 무용계에서 가장 유명한 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49살 동갑인 두 사람은 각각 한국무용과 발레를 대표하는 무용수로 군림했다. 아내 김미애가 1997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한 이후 25년째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남편 김용걸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아시아 발레리노 최초로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에서 활동하다가 2009년 귀국한 이후에는 안무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장르가 달라서 함께 춤춘 무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2006년 정동극장 아트프론티어 시리즈의 김미애 편에 김용걸이 특별 출연한 뒤 2012년 김용걸 안무작 ‘비애모’ 공연에선 남녀 주역으로 함께 춤을 췄다. 그리고 2019년 제주에서 열린 무용인한마음축제와 지난해 성남아트센터의 아티스트 인사이트 시리즈의 ‘발레리노 김용걸&한국무용가 김미애’ 편에서 공동 안무 및 출연한 ‘볼레로’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4차례 같은 무대에 섰던 부부가 오는 1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 ‘무용가 김미애-여[女]음’에서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이번 공연은 시댄스가 올해 25주년을 맞아 기념 특집인 ‘춤에게 바치는 춤들’에서 선보이는 5편 가운데 하나다. 다만 김용걸은 이번엔 연출가로서 아내와 함께한다. 공연을 앞두고 지난 6일 국립극장에서 두 사람을 만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부가 함께하는 5번째 무대… 김용걸은 이번엔 연출
“무용축제가 대부분 안무가에게 초점을 맞추는데요. 시댄스가 지난해 무용수를 조명하는 무대를 부활시켰습니다. 이번 공연은 저 자신을 오롯이 보여주는 무대이니만큼 제가 생각하는 한국춤의 본질 그리고 춤에 대한 고민을 담으려고 합니다.”(김미애)
김미애는 이번 무대에서 11년째 사사하고 있는 서울교방 김경란류의 춤을 중심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진주권번 출신의 마지막 예기(藝妓)였던 고(故) 김수악 명인의 전수조교였던 김경란 서울교방 대표는 서울대 미대 재학중 운동권에 투신, 80년대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와 전국노동자협의회(전노협) 문화국장으로 노동현장의 각종 문화행사를 지휘했던 인물이다. 1989년 김수악 명인의 공연에 매료돼 전노협 문화국장을 그만두고 제자가 되어 예맥을 이어받았다. 서울교방은 전통춤을 업으로 하는 전문춤꾼의 공동체로 무용계에선 실기와 이론 공부를 병행하는 드문 곳으로 유명하다.
“2008~2009년 1년간 국립무용단을 휴직하고 남편이 있던 파리에 갔었어요. 국립무용단 입단 이후 춤에만 빠져 살았는데, 당시 내가 왜 춤을 추는지 이유를 느끼지 못해 고민이 컸거든요. 이렇게 건조하게 시간 때우듯 춤을 추면 안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파리에서 사람들에게 한국춤을 춰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출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한국춤이 아니라 국립무용단 작품을 해온 거였으니까요. 그때 제가 추는 한국춤에 대해 고민을 정말 안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귀국 후 우리 춤의 뿌리를 다시 찾고 싶어서 김경란 선생님께 갔습니다. 한국 전통춤 분야는 대체로 제자가 스승의 춤을 보전하는 데 무게가 실려있지만, 김경란 선생님은 저 자신만의 춤을 찾으라고 늘 말씀하세요. 11년째 매주 목요일마다 선생님께 춤을 배우면서 제가 많이 성장한 것을 느낍니다.”(김미애)
김미애의 진솔한 모습 보여주는 영상도 활용
제주 출신인 김미애는 무용학원에 다니다가 19살에 제주도립무용단 직업무용수로 무용계에 정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고등학교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탓이다. 하지만 무용을 더 배우고 싶다는 욕심으로 2년 뒤 상경해 한성대에 입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국립무용단에 들어간 그는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춤과 하나되는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핀란드 안무가 테로 사리넨이 안무한 국립무용단 ‘회오리’에서 조안무를 맡는 등 때때로 안무가로 나선 적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무용수라는 것을 계속 강조했다.
김미애는 “주변에서 안무를 본격적으로 도전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무용수로서 안무가와의 소통을 통해 그 의도에 맞게 춤을 보여주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밝혔다. 옆에서 김미애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던 김용걸은 “아내는 춤을 배우는 자세가 매우 깊다. 새롭게 춤을 만드는 대신 만들어진 춤에 파고들어 흡수하는 것을 재밌어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란류 살풀이 등 5개의 레퍼토리로 구성되는 이번 시댄스 공연은 전통적인 악사들 외에 피아노, 카운터테너 등의 음악이 나오는 독특한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김미애가 출연했던 어떤 공연보다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도 비중 있게 활용될 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김용걸이 직접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과 함께 최근 삼성문화재단 잡지에서 김미애 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메이킹 영상 등이 삽입된다.
“아내는 이번 공연에서 진솔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제가 찍은 영상을 보고는 걱정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민낯을 공개하는 게 예술가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아내보다 1년 먼저 정동극장 아트프론티어 시리즈에 출연했을 때 춤 외에 파리오페라발레 단원 시절 제 일상을 영상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같은 발레단 동료가 찍은 것인데, 저 역시 ‘이런 영상까지 보여준다고?’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막상 영상이 공개된 후 파리오페라발레에서 고생하던 제 모습을 보고 팬들이 저를 더욱 이해하고 좋아하셨다고 해요. 이번 아내의 공연에서도 관객들이 예술가로서 아내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김용걸)
“오랫동안 무대에서 춤추고 싶다”
그동안 둘이 함께 작업했을 때 갈등은 없었는지 궁금해진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 사이라도 예술관의 차이로 싸우는 경우는 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무용과 발레라는 다른 장르의 무용수가 함께 춤추기가 쉽지 않다. 김미애는 “‘비애모’ 때 정말 많이 싸웠다. 저는 한국무용 전공자라서 발레의 ‘리프트(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들어 올리는 것)’를 잘 못 한다. 그런데, 남편이 저를 냅다 던졌다”고 눈을 흘겼다. “내가 언제 그랬어?”라며 억울해하는 김용걸을 보며 웃던 김미애는 “그래도 ‘비애모’ 때 남편의 음악성에 다시 한번 감탄했었다. 당시 남편이 음악을 직접 편집했는데, 작품과 정말 잘 어울렸다”며 결국은 남편을 칭찬했다.
이번 공연은 김용걸이 다리 수술을 받은 직후라 출연할 수 없었지만, 부부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나이만 보면 무용수로서 전성기를 지났지만 두 사람은 오래오래 무대에 서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무대에 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오늘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