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 재도약 준비할 때입니다”

입력 2022-09-12 07:00
배현주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7일 독일 카를스루에 콩그레스센터 안에 마련된 기도 텐드에서 한국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신약학자인 배현주 전 부산장신대 교수는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부산 총회 때부터 9년 동안 WCC 중앙위원과 실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50명에 달하는 WCC 중앙위원 중 22명을 별도로 선발해 구성하는 실행위원회는 WCC의 핵심 의결 기구다. 중앙위원회 의장과 2명의 부의장이 참여해 전체 25명이 실행위원이 된다.

지난 6일 WCC 11차 독일 카를스루에 총회가 새 중앙위원을 선정하면서 배 교수의 임기는 마무리됐다. 그는 성실했던 중앙·실행위원으로 평가 받았다. 2년에 한 번 모이는 중앙위원회와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실행위원회에 참석한 뒤 자세한 보고서를 만들어 한국 교회와 공유했다. 세계 교회의 관심사를 한국 교회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려는 ‘에큐메니컬 다음세대’를 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WCC에서의 임기를 마친 뒤에도 에큐메니컬 다음세대 양성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배 교수를 지난 7일 WCC 11차 총회가 진행되는 독일 카를스루에 콩그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교회가 세계에 이바지할 때가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한 배 교수는 한국 교회가 기후 위기 시대에 기여할 길이 있다고도 했다.

“세계 기독교 인구가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옮겨지는 21세기에 한국 교회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로 자리매김했던 서구의 역사를 밟지 않은 젊은 교회인 한국 교회는 예수 운동과 하나님 나라 운동, 초대교회 운동의 정신을 되살리는 본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교회가 1919년 3·1 운동 당시처럼 전국적 연대를 통해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한다면 세계 교회에 큰 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배 교수는 한국 교회가 ‘성서적 교회론’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서적 교회론이란 교회의 본질과 목적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웠고 교회의 주인을 예수’로 고백하며 사역하는 걸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의 일원으로 교회 일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영역이죠.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 세상 속에서 교회는 모든 분열의 담을 사랑의 십자가로 허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앙 공동체로 우뚝 서야 합니다.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 값비싼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이기도 하죠. 복음의 능력은 용서와 치유, 화해의 역사 속에서 나타납니다. 성서적 교회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실천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WCC에 가득한 유럽 중심주의를 경계해야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헌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WCC가 서구 기독교에서 태동한 역사적 뿌리로 인해 유럽 중심주의가 암암리에 지속하는 게 사실입니다. WCC 내부에서도 ‘탈유럽’ 해야 한다는 의식은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WCC 운동과 살림살이에 세계 교회들이 더욱 적극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고 건설적 비판을 제기하며 교류하고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남북의 화해를 위해 1984년 시작된 ‘도잔소 프로세스’ 이후 지금까지 WCC는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와 관심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런 배후에는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 지도자들이 WCC의 운동에 직접 공헌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관심을 지속해서 촉구했던 전 역사가 있었습니다. 준비된 사람을 WCC 본부가 있는 제네바로 보냈고 이들뿐 아니라 국내 에큐메니컬 인사들도 중앙위원회 실행위원, 아시아 지역 회장으로 헌신하며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지속해서 강조했던 결과입니다. 이런 긴 시간을 둔 노력이 유럽 중심적인 WCC의 지역적 편중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배현주 교수가 WCC 11차 카를스루에 총회 기간 중 아침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다. 배 교수는 10차 총회를 시작으로 두 차례나 성경공부 교재 집필과 인도를 했다.

배 교수는 에큐메니컬 다음세대 양성을 비롯해 에큐메니컬 저변 확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위원과 실행위원으로 9년 동안 WCC에서의 봉사직을 마감하면서 한국 교회가 성서적 토대에 견실하게 설 때 에큐메니컬 운동이라는 단단한 음식을 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됐습니다. 2013년 부산 총회와 2022년 카를스루에 총회에서 진행됐던 두 차례의 성경공부 교재를 집필하고 인도할 기회를 얻게 됐는데 성서학자로서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선 집필과 교육을 통해 한국 교회의 성서적 신앙 운동의 뿌리를 다지는 일에 다시 복무하고 싶습니다. 목회자 평생교육과 평신도 지도자 교육, 신학생 교육, 청년 교육, 여성 교육 등에 기회 있을 때마다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또한, 기후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그린 엑소더스’를 위해 국내 여러분들과 협력하면서 세계 교회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글로컬 에큐메니즘이 국내에 활성화되는 일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배 교수가 말한 그린 엑소더스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미세 먼지까지 가중되는 현실 속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한국 교회의 탈 탄소(탄소 중립) 선언을 끌어내기 위한 캠페인을 말한다.

그는 11차 총회에 50여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참여한 것이 한국교회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하며 반색했다. 11차 총회에는 우리나라에서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이 중 25%가 청년들이었다.

11차 총회 전체 참가자는 물론이고 청년 참가자들은 1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총회부터 9차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총회까지 해외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한 모든 한국인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수였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 시대 지도력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높게도 날고 낮게도 날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세계적 안목을 지니고 또 구체적으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역 교회와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도 함께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 카를스루에까지 와서 WCC 총회에 참석하는 청년들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만이 아니라 세계 시민이자 지구 시민이라는 정체성에도 열려있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기후 위기 문제가 대표적이겠습니다만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힘이 참 중요한데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운동처럼 네트워크 지수(NQ)가 높은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총회 참석을 통해 청년들이 교회의 저력과 에큐메니컬 운동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이 경험이 각자 인생을 보람 있게 설계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카를스루에(독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