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은 한자고 X알은 한글인데, X알이라고 하면 왜 음란하게 보죠?”
할 말이 없다. 홍성우(48)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던지는 질문들은 대체로 그렇다. 사람들이 ‘고상(高尙)’이라는 가면 뒤에서 성(性)을 얼마나 음지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지 상기시킨다. 한자와 영어, 전문 용어의 포장지로 잔뜩 가린 뒤에야 공공의 영역으로 나올 수 있는 성. 한국사회의 그 오래된 금기의 대상이 최근 유튜브뿐 아니라 지상파에서도 차츰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시발점에는 일명 ‘꽈추형’으로 불리며 성을 일상 대화 영역으로 끌어들인 홍성우 전문의의 활약이 있다.
‘꽈추형’은 그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만들어준 이름이다. 댓글 창에서 소통하던 사람들은 다소 부르기 부끄럽고 민망한 남성의 성기를 홍 전문의를 따라 친근하게 ‘꽈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유쾌하게 풀어주는 홍 전문의가 마치 동네 형 같다며 ‘꽈추형’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남자 성기만 애칭으로 부르는 것은 아니다. 홍 전문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전문의들과 상의 후 여성의 성기는 ‘소중이’라고 부르고 있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명해졌지만 홍 전문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교육이다. 얼핏 들으면 식상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성교육은 성에 관한 환상을 깨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교육과 매우 다르다. 성은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야 하는 하나의 지식이자 일상이며, 평생 즐기는 대상이라는 것이 홍 전문의의 생각이다. 성에 관한 콘텐츠가 금기시되고 동시에 높은 기대감을 주는 마약 같은 존재로 남게 될수록 오히려 그 기대감이 불건전한 방향으로 폭발한다는 것이다.
올해 초 홍 전문의가 고등학생들과 찍은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500만회가 넘는다. 남학생들은 ‘술 마시면 성관계가 하고 싶어지나요?’ ‘누워서 자위해도 되나요?’ ‘앉아서 소변을 봐도 되나요?’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는 성에 관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다”고 토로했다.
여학생들은 ‘가장 확실한 피임 방법은 뭔가요?’ ‘쌍둥이는 어떻게 생기나요?’ ‘왜 남자들은 아침에 발기하나요?’ 등 평소 궁금했던 점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받았던 성교육 중 생각나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영상에는 자녀와 함께 영상을 시청했다는 부모들의 댓글이 다수 달렸다. 본인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히면서 학생들에게 이 영상을 교육용으로 틀어줬다고 쓴 댓글도 있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는 성교육이 학교에서 부재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무조건 성관계를 막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유튜브 댓글 창에는 홍 전문의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앉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부모와 자식 간 어색하지 않은 성 대화법을 추천해준 홍 전문의를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그의 병원에서 만났다. 그가 ‘꽈리고추형’에서 ‘꽈추형’으로 불리기까지 겪어야 했던 험난한 여정도 함께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추석 때 자연스럽게 자녀와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녀에게 하나에 ‘몰빵’하지 말라고 말해줘야 한다. 공부, 운동, 게임 등 여러 가지 활동이 있는데 자위 같은 성적인 행동에만 에너지를 쏟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무조건 막는 게 아니라, 해도 되지만 그쪽에만 집중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공감이다. 부모가 자연스럽게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 ‘나도 그때는 뜨거웠다’ ‘친구들끼리 테이프 돌려봤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야한 소설 보다가 교무실 갔다’ 이러면서 조언도 하는 거다. 부모의 경험을 공유할 때 자녀들도 성적 경험을 공개하는 것에 거부감이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유럽 등 서구에서는 이런 대화를 많이 하나.
“최근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유럽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말 중 하나가 ‘가족끼리 뽀뽀하는 것 아냐’라는 말이라고 한다. 섹스를 함께 즐기고 살아야 하는 부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섹스를 터부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유럽에서는 아들이 여자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거나 가족한테 이성 친구를 소개하면 암묵적으로 그 두 사람이 성관계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가 직접 자녀들 방에 콘돔을 챙겨두고 피임에 신경 쓰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아이들 발육 속도가 빨라지고 첫 경험 나이대가 낮아지는데, 성교육이나 성문화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바뀌어야 하나.
“성교육과 성문화다. 유럽 성교육 교재를 보면 굉장히 상세하다. 5살부터 볼 수 있는 교재에 부모가 섹스하는 과정이 삽화로 담기는데 성기를 삽입하는 모습까지 단계별로 설명한다. 뱁새나 황새가 애를 물어다 준다는 우리나라 교육과 달리 굉장히 현실적이다. 일반적 대화에서도 그 사회의 성문화가 드러난다. 만약 남녀가 만나 성격이 안 맞거나 생활 방식이 달라 헤어진다고 하면 이해하지만, 속궁합이 안 맞아서 헤어진다고 하면 음란하게 본다. 잠자리는 참고 넘길 수 있는 가벼운 문제라고 보는 문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로 이혼까지 가는 부부를 많이 봤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성에 대한 태도를 평가한다면.
“굉장히 이중적이다. 대학교 동창회에 가면 다른 과 의사에게는 당당히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과 의사에게는 소화 불량을, 정형외과 의사에게는 디스크를.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다가 자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갑자기 우르르 몰려온다. 정력에 좋은 약 없냐, 아내 혹은 남편과 잠자리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등 몰래 물어본다. 비뇨의학과도 하나의 의학인데 본인들 스스로가 계속 숨기고 음지화하는 것이다. 공중화장실에 가면 비아그라 약 광고 스티커를 한 번쯤 본적이 있을 것이다. 병원에 오면 비아그라 카피약을 파는데 그런 불법 약보다 더 저렴하고 안전하다. 그런데 굳이 불법으로 구매하는 이유가 비뇨의학과에 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다. 평생 성을 고민하면서 일상에서는 관심 없는 척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다르지 않나.
“흔히 말하는 MZ세대는 좀 달라진 것 같다. 요새는 젊은 친구들이 병원을 방문해 성병 검사를 많이 받기도 하고, 그 검사 결과지를 복사해 간다. 이유를 물어보면 여자친구한테 보여준다고 하는데, 성관계를 하기 전 남녀가 서로의 성병 검사 결과지를 보여주는 게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MZ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소개팅앱을 보면 본인에 대한 소개란에 가다실 접종자라는 것을 밝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이런 걸 스펙(?)처럼 올림으로서 내가 성적인 면으로 개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건 바람직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신혼부부의 가장 큰 고민이 ‘섹스리스’라는 설문 결과도 있는데.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말할 때 ‘저는 성공해서 좋은 집과 차를 살 거예요’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낼 거예요’ ‘부자가 돼서 매주 비싼 레스토랑에 갈 거예요’라고 말하면 열심히 산다고 응원해준다. 그런데 ‘저는 멋진 배우자를 만나서 매주 즐거운 섹스를 즐기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음탕하게 본다. 사실 부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불만족스러운 잠자리인데도 그렇다.”
-‘꽈추형’으로 지상파까지 출연했다. 사회가 바뀌고 있다.
“그건 맞다. 예전에는 지상파에서 ‘꽈추형’을 쓸 수 없다고 해서 ‘꽈리고추형’의 줄임말인 것처럼 내보내기도 하고 여러 에피소드가 많았다. 방송에 나가서 무슨 말만 하면 ‘삐~’ 처리되는 것이 빈번했다. 계속 ‘괜찮다. 꼭 필요한 이야기다. 이건 불법적인 게 아니다’면서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유튜브 콘텐츠에서도 청소년들의 성 고민, 더 나아가 성인들의 성 고민을 듣고 답을 주면서 음지에 감춰있던 것을 양지로 꺼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비뇨의학과 교수님 중에 이런 콘텐츠를 탐탁지 않게 보는 분들도 있다. 비뇨의학과를 희화화한다고 보시는 거다. 하지만 나는 이런 유튜브 콘텐츠가 가진 긍정적 역할이 더 크다고 본다.”
-30년 후엔 ‘꽈추할아버지’가 되는 건가.
“아마 그때도 영원히 ‘꽈추형’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지금 20대 젊은 동생뿐 아니라 60대, 70대 어르신도, 자녀를 둔 부모들도 나를 꽈추형으로 부른다. ‘형’은 나에 대한 지칭보다는 성을 형처럼 친숙하게 보게 됐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담긴 것이다. 고유명사 같은 개념이 아닐까. 그래서 여성분들도 나를 꽈추형으로 부르는 거다. 30년 뒤에 지금처럼 활발하게 유튜브나 방송을 하고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래도 희망 사항은 있다. 사람들이 ‘꽈추형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즐겁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 정도만 생각해주면 좋겠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