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의 통화 긴축과 경기침체 우려 속에 최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종가 기준 20년 만에 110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은 연고점 행진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선진국의 화폐 가치 추락이 눈에 띈다. 강달러를 완화할 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당분간 환율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7일까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6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뚫고 1380원대에 진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이후 13년 5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른바 ‘킹달러의 폭격’이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털링,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09 근처에서 횡보하고 있다. 6일엔 종가 기준 110.21을 기록해 2002년 1월 이후 20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110을 돌파했다.
다시 말하면 주요 선진국들의 화폐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파운드는 지난 7일 1.1407달러까지 내려 1985년 이후 3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내년에는 지난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1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달러의 가장 큰 경쟁자인 유로도 지난달 15일부터 3주간 ‘1달러=1유로’ 패리티(parity·등가)가 붕괴되며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에도 건재했던 이들 화폐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이유는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다. 러시아는 유럽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에너지 공급을 축소하며 유럽에 에너지 충격을 안겨줬다. 최근엔 자국산 원유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는 국가에 석유와 가스를 일절 수출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이 영향으로 유럽에선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펼쳐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8일 자이언트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고물가에 대응했지만 반대로 경기 침체 우려는 한층 커지게 됐다. 추가적인 긴축에 부담이 생긴 셈이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양호한 경제 지표에 힘입어 공격적 긴축 드라이브를 유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는 강력한 고용 지표는 금리 인상의 명분이 된다. 이같은 상황 차이는 향후 두 시장의 금리 차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은 유로, 엔 등을 팔아 수익률이 좋은 미 국채 매입에 나서면서 달러 수요는 더욱 커지게 된다.
당분간 강달러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달러 가치를 높이는 연준의 긴축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중국과 유럽의 경기 부진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탓이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의 하락세가 예상보다 완만하고 기대인플레이션도 크게 낮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 원·달러 환율의 1450원 가능성도 열어놔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