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식을 매매하는 국내 투자자, 이른바 ‘서학 개미’의 올여름 반등장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수천억원 단위로 늘어난 ‘밈주식’ 거래량이다.
‘밈(meme)’은 인터넷상에서 맥락 없이 형성돼 인기를 끌게 된 문화 요소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비롯된 ‘밈주식’은 미국 커뮤니티 레딧 회원들의 선동이나 괴소문으로 호재나 악재 없이 등락하는 종목을 칭한다. 재정 상태가 부실해 장기 투자에 부적합한데, 상한가 없는 뉴욕증시에서 하루에도 많게는 50% 넘게 등락하며 서학 개미를 현혹한다.
추석 때 받은 용돈을 몇 배로 불리겠다며 밈주식에 투자하면 상당한 손실을 볼 수 있다. 추석 연휴(9~12일)에 살짝 늘어난 지갑을 보며 예·적금을 대신할 투자처를 물색할 때 밈주식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 웹사이트 ‘밈스톡 트래커’는 레딧의 주식 투자 커뮤니티인 ‘월스트리트 베츠’에서 종목별 24시간 언급량을 산출한다. 9일(한국시간) 가장 많이 언급된 밈주식 3종목은 베드배스앤드비욘드, AMC 엔터테인먼트 홀딩스, 게임스톱이다. 세 종목 모두 코로나19 대유행 3년째 강한 변동성을 나타낸 밈주식의 대표주로 지목돼 있다.
1. 베드배스앤드비욘드 [BBBY]
베드배스앤드비욘드는 지난 7~8월 뉴욕증시의 반등장에서 밈주식을 이끌어온 미국 가정용 생활용품 소매점 체인이다. 지난달 1일 나스닥에서 4.94달러로 출발한 주가는 같은 달 17일 장중 30달러에 도달했다. 불과 13거래일 만에 주가를 6배나 끌어올린 셈이다. 급락은 곧 찾아왔다. 베드배스앤드비욘드는 지난달 20일 40.54%나 폭락하며 뉴욕증시의 성장주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
베드배스앤드비욘드의 주가를 움직인 건 또 다른 밈주식 게임스톱의 회장이자 행동주의 투자자인 라이언 코언이었다. 코언은 베드배스앤드비욘드의 주가 상승을 예상하고 콜옵션을 대거 매입했다가 지난달 지분 11.8% 전량을 매각해 주가 폭락을 불러왔다.
그사이 수많은 서학 개미의 자금도 베드배스앤드비욘드로 몰렸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서 지난달 미국 주식 종목별 거래액을 보면, 베드배스앤드비욘드의 총 거래액은 2억6264만6253달러(약 3600억원)로 9위를 차지했다. 매수 결제액이 1억3490만7669달러로, 매도 결제액 1억2773만8584달러를 앞질렀다. 이미 손절매해 손실을 확정했거나 원금을 회복하지 못하고 보유한 서학 개미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베드배스앤드비욘드의 경영난은 기업의 존폐까지 위협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마크 트리턴, 최고상품책임자(CMO) 조 하트시그가 지난 6월 물러나 리더십 공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 구스타보 아날까지 사망했다. 아날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일 뉴욕주 맨해튼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재무구조 조정 계획을 투자자들에게 설득하고 5억 달러 규모의 현금 조달 계약을 마무리한 직후 사망했다.
2. AMC 엔터테인먼트 홀딩스 [AMC]
미국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 AMC는 코로나19 대유행 초창기인 2020년만 해도 2달러 안팎에서 거래된 소형주였다. 지난해 1월로 넘어오면서 돌연 20달러대로 급등하더니 같은 해 5월부터 강한 매수세를 타고 7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AMC의 이런 강세를 놓고 코로나19 백신 보급에 따른 영화관 매출 상승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AMC의 주가 등락은 밈주식의 전형적인 유형으로 보였다. 레딧 회원을 중심으로 한 밈주식 투자자들이 AMC를 놓고 연일 ‘단타 대회’를 펼치는 동안 경영진은 자사 주식을 매각하며 배를 불렸다. 애덤 에런 CEO는 나스닥이 고점을 찍고 하락장에 들어갔던 지난해 11월에만 2500만 달러(약 345억원·당시 기준 약 300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밈주식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떠넘기고 거액을 손에 쥔 셈이다.
밈주식으로 몰리는 자본의 단맛을 본 AMC 경영진은 레딧에서 얻은 인기에 노골적으로 편승하고 있다. AMC는 추가 현금을 조달할 수단으로 모든 주주에게 배당한 우선주의 티커를 ‘APE’로 설정해 지난달 23일부터 거래를 시작했다. ‘APE’는 유인원을 뜻한다. 레딧 회원들은 생각 없는 투자자를 유인원에 비유해 조롱해왔다. AMC 우선주 티커는 레딧 회원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종목을 거래한 날 AMC는 41.95%나 급락했다.
제이 리터 플로리다대 교수는 미국 경제채널 CNBC와의 인터뷰에서 AMC의 우선주 발행을 “사실상 1대 2의 주식분할과 같다”며 “주가를 50%가량 끌어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서학 개미의 ‘AMC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집계된 AMC의 지난달 거래액은 2억3095만1572달러(약 3200억원)로 집계돼 전체 순위에서 18위에 올랐다. 베드배스앤드비욘드와 마찬가지로 AMC에 대한 매수액(1억3937만9412달러)이 매도액(9157만2160달러)을 앞질렀다.
3. 게임스톱 [GME]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의 증권시장에서 밈주식을 문화 현상 수준으로 끌어올린 건 미국 게임 소매업체 게임스톱의 ‘숏 스퀴즈(short squeeze)’ 사건이다. 콘솔 게임을 유통하며 소규모로 운영된 게임스톱은 공매도 세력에 반발한 개인 투자자에 의해 급등한 밈주식의 원조 격으로 꼽힌다.
레딧에서 활동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1월 게임스톱 폭락 당시 ‘공매도 세력에게 힘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집중 매수를 결의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 공매도 세력에 큰 손실을 입혔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레딧의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을 물리친 뒤에도 매수와 매도를 선동하며 게임스톱 주가의 등락을 결정했다. 특정 종목이 밈주식으로 전락하는 전형적 과정을 보여줬다. AMC와 베드배스앤드비욘드 모두 게임스톱과 같은 전철을 밟았다.
한동안 레딧 회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게임스톱은 이날 뉴욕증시 개장을 앞두고 밈스톡 트래커에서 베드배스앤드비욘드 다음으로 많이 언급돼 ‘경고등’을 켰다.
하루 3분이면 충분한 월스트리트 산책. [3분 미국주식]은 서학 개미의 시선으로 뉴욕 증권시장을 관찰합니다. 차트와 캔들이 알려주지 않는 상승과 하락의 원인을 추적하고, 하룻밤 사이에 주목을 받은 종목들을 소개합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