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일종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단순히 좋아하고 말고 그런 게 아닙니다. 생명과 같은 거죠.”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해 올해 연기 인생 60주년이 된 원로배우 신구(86)가 지난달 30일 시작해 10월 23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두 교황’에서 연기 혼을 불사르고 있다. 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두 교황’ 기자간담회에서 신구는 “배우 인생 60년이라는데, 지나고 보니 다 어제 같고 새로 시작하는 거 같다. 내 나이가 어느새 이렇게 됐나 싶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관객을 불러모으는 이순재, 오영수 등 원로배우들이 세계적인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에 빗대 ‘방탄노년단’으로 불린다는 취재진의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면서 “방탄소년단에 빗댄 게 고맙긴 하지만 원로배우들 각자 성실하게 살아온 결과가 그렇게 나타난 것 아닌가 싶다. 원로배우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 고마울 뿐이다”고 말했다.
영국의 세계적인 극작가 앤서니 매카튼이 쓴 연극 ‘두 교황’은 지난 2013년 자진 퇴위로 세계를 놀라게 만든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어 비유럽 출신으로 처음 교황이 된 베르골리오 추기경(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지난 2019년 영국에서 연극이 초연됐고, 이듬해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돼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신구는 베네딕토 16세로 분해 베르골리오 추기경 역의 정동환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했지만 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예요. 작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선뜻 출연에 동의했지만, 막상 대본을 읽어보니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구구절절 작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회의 변화를 위해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많은 울림을 주더라고요. 제 성격 역시 두 캐릭터 중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에 가까운 것 같아서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두 교황’은 3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 동안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리오 추기경 역의 두 배우가 끊임없이 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신구의 경우 지난 3월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하던 중 건강이 악화해 입원했다가 회복한 뒤 ‘두 교황’에 출연하는 것이어서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그동안 건강을 잘 유지해왔다고 생각했어요. 병원도 잘 가지 않았었는데, 80살 넘으면서 몸의 변화에 스스로도 놀랐죠. 특히 지난봄에 생각지도 않았던 심부전 증상으로 입원했는데, 지금은 의사가 처방한 대로 약을 잘 먹고 있어요. 현재 건강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에요. 나이가 있으니 삐걱거리지만, 그런대로 견디고 있습니다.”
‘두 교황’ 제작사인 에이콤에 따르면 신구는 개막 전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에도 거의 매일 연습실에 나올 정도의 에너지로 건강에 대한 우려를 잠재웠다. 또한, 빼곡한 메모로 가득 찬 신구의 대본은 제작사 관계자들에게 연습에 대한 신구의 집중도에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래서 막이 오른 후 혹시나 대사가 생각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배우 인생 처음으로 ‘인이어’(in-ear)까지 착용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신구는 “배우에게 연극을 이끌어가는 특별한 재주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대본과 연습에 충실한 결과가 본공연에서 발현되는 것 아닐까 싶다”면서 “본공연이 개막했지만, 아직도 제게 부족한 점이 느껴진다. 앞으로 열심히 채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신구와 함께 온 정동환도 “신구 선생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게 ‘연극은 연습이야’였다. 바로 그런 게 선생님의 인생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힘이 아닌가 싶다”고 거들었다.
평생 연기를 해온 신구는 이번 작품을 마지막 무대로 말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연극을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사실 ‘두 교황’ 같은 대작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에 따른) 한계도 느낀다”면서도 “앞으로도 건강이 따른다면 계속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