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가 시작됐다. 바쁜 일상으로 벌초를 아직 못한 사람들은 연휴 기간에 벌초를 하거나 또 차례를 지낸 후 성묘를 위해 가족과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한다.
산에 오를 때는 불청객인 ‘벌 쏘임’을 조심해야 한다. 조상 묘 주변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땅벌이나 나무에 집을 짓는 말벌들이 경계 대상이다. 이들 벌은 가을에 특히 독이 강하기 때문이다.
벌에 쏘이면 보통 해당 부위만 붓고 아프지만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아나필락시스(급성 쇼크)’ 반응으로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벌독 알레르기 검사를 통해 자신이 아나필락시스 위험을 갖고 있는지 미리 알아두면 보다 잘 대처할 수 있다.
현재 시중에는 말벌과 땅벌 등 국내 모든 벌들의 벌독 알레르기 유무와 함께 중증 이상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발생 여부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검사들이 제공되고 있다.
#개인 편차 큰 벌쏘임 증상…급성쇼크 발생 시 ‘생명 위험’
8~9월은 벌이 산란하는 시기로 개체 수가 늘고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벌쏘임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벌에 쏘여 병원 진료를 받은 6만3174명 가운데 8~9월 환자는 52.1%(3만2906명)로 절반이 넘는다.
벌에 쏘이면 심한 경우 중증 반응으로 이어져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특히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즉각적으로 일어나 전신 발작, 호흡 곤란, 의식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벌에 쏘였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보통은 물린 부위 주변이 빨갛게 부어오르거나 통증 가려움 등이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반면 벌독에 예민한 사람이 벌에 쏘이면 몸 전체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위 경련, 자궁 수축, 설사 증상 등 전신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목 안(인두·후두)이나 기도 위쪽이 심하게 부으면서 쇼크가 발생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벌독에 의한 증상의 편차가 큰 원인은 벌독이 지닌 독성의 강도 차이가 아니라 개인의 면역 체계와 알레르기 반응 때문이다.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단순 벌쏘임이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 벌에 쏘이게 되면 우리 몸 속 비만세포가 외부에서 침입한 항원인 벌독을 인식하고 백혈구 등 항원과 싸울 수 있는 세포들을 불러들이는 ‘히스타민(Histamine)’을 분비한다.
히스타민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로,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량을 늘리고 상처 부위에 부종과 통증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만약 벌독 알레르기 환자가 벌에 쏘이면 히스타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는데, 이때 혈액이 지나치게 빠져나와 혈압이 떨어지고 몸이 붓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부작용이 급격히 심해지고 적절한 응급조치가 없을 경우 심하면 ‘쇼크사’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아나필락시스 반응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치료 후에도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한다.
#간단한 피 검사로 벌독 알레르기 여부 미리 파악 권고
아나필락시스 반응으로 인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지 미리 확인해 보는 것도 도움된다. 특히 벌에 자주 노출되는 환경에 근무하는 소방관이나 양봉업자, 과거 벌에 쏘인 후 조금이라도 알레르기 반응을 겪은 사람이 벌 서식 위험이 있는 곳을 찾을 경우에는 가까운 내과나 가정의학과에서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벌독 알레르기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국내 몇몇 진단검사기관에서 발독 알레르기 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GC녹십자의료재단의 경우 벌독에 대한 혈청 특이 IgE(면역글로불린E)를 측정해 알레르기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이뮤노캡(ImmunoCAP) 벌독 알레르기 항원 정밀검사’와 비만세포가 활성화될 때 증가하는 혈중 트립타제(Tryptase)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이뮤노캡 트립타제 검사’를 권장한다.
간단한 혈액검사로 5종(i1, i2, i3, i4, i5)의 벌독에 대한 알레르기 유무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벌독에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지원 GC녹십자의료재단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는 9일 “i1은 꿀벌, i2는 말벌, i3은 땅벌, i4는 말벌의 알레르기 여부를 알려주는 검사법이다. 5종 외에도 국내 모든 벌에 대한 알레르기 유무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에 벌독을 비롯한 곤충 독에 심각한 쏘임 반응 병력을 보인 환자의 경우 비만세포 부하의 증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트립타제 검사를 통해서 아나필락시스 같은 심각한 반응 위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전문의는 “벌독 알레르기 환자 중에는 급성 쇼크 위험이 있는 ‘동시 양성(Double positivity)'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땐 알레르기 반응의 중증도를 사전에 예측해 볼 수 있는 트립타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벌독 알레르기를 보인 환자들은 주로 하나 이상의 벌독 종류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고 벌에 쏘이는 시점에 어떤 종류의 벌에 쏘였는지 구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벌독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벌독 알레르기 환자의 절반 정도는 여러 종류의 벌독 검사에서 ‘동시 양성’을 보인다. 이는 어떤 항원에 의해 만들어진 항체가 그 항원과 성질이 비슷한 물질에 대해 반응하는 ‘교차 반응’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정확한 원인 벌독을 확인해 아나필락시스 쇼크에 대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이 전문의는 “평소 벌쏘임 위험이 높거나 추석 연휴 벌초나 성묘를 준비하고 있다면 해당 검사를 통해 벌독 알레르기 여부를 사전 진단해 보기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