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추석, 이 말만은 피해주세요 “너 계획이 뭐니”

입력 2022-09-09 06:30 수정 2022-09-09 08:33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매일이 한가위, 즉 추석같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러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날씨, 한 해 중 가장 넉넉히 음식을 장만해 먹고 누리던 명절인 추석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롭고 즐겁게 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추석이 나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넉넉함을 나누고자 만나는 가족, 친척들과의 모임이 상처가 될 때다. 상처의 시작은 안타깝게도 나름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고자 던진 말인 경우가 많다.

“앞으로 계획이 뭐니”…명절 최악의 말, 피하세요
그 좋다는 추석마저 망치게 하는 말들은 무엇일까.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행복한 추석을 위해 피해야 할 대표적인 말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혹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건네는 세 가지 말을 꼽았다. 바로 “앞으로 계획이 뭐니?” “나 때는 말이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다.

신 교수는 추석 연휴를 앞둔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첫 명절인 이번 추석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자”면서 “(추석에 조심해야 할 말) 톱(TOP) 3을 짚어보겠다”며 이같이 나열했다.

신 교수는 “(명절에)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찾아봤는데 (상대는 내게) 관심을 두자고 하는 얘기인데 나는 관심들이 너무 과도해서 싫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1위로 꼽은 건 “앞으로 계획이 뭐니?”다. 신 교수는 “관심의 최절정으로 모든 말을 다 포괄하는 말”이라면서 “어느 학교, 어느 직장 갈 거냐는 질문도 ‘계획이 뭐냐’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특히 “앞으로 계획이 뭔지 진짜 궁금하다면 평소에 관심을 갖고 그러면 다 알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짜 상대방이 걱정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중요한 상황은 알 것이며, 정말 걱정돼서 하는 질문이라면 “신중한 말투로 하며, 그건 (듣는 사람도) 다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그런데 이런 말들은 대체로 건성으로 한다. 사실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2위로는 ‘요즘 애들은’과 ‘라떼는(나 때는)’과 같은 비교, 3위는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와 같은 잔소리를 꼽았다. 신 교수는 “모두 오랜만에 보는 친척을 향한 관심의 밀도를 보여주는 말들인데, 정작 듣는 사람은 ‘왜 저러지’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외에도 “외모 평가를 정말 조심해야 한다”면서 설사 예뻐졌다는 식의 긍정적인 말도 “외모가 평가의 대상이 된 사람은 불쾌할 수 있다. 특히 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 교수는 “다만 성장기 아이들에게 ‘많이 컸다’는 표현은 괜찮다”고 덧붙였다.

상대에게 상처를 준 말이 애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 교수도 “관심의 표현이고 ‘나 너하고 말하고 싶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다만 “대체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말을) 한다. 어른이니까 관심을 표현해서 관계를 좀 더 부드럽고 좋게 하기 위한 얘기인데 의도는 알겠지만 세련되지는 못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아랫사람에 해줄 얘기 대신 서로 나눌 화제 찾아야”
그렇다면 이번 추석에 서로 상처 줄 일없이 유쾌한 대화를 나눌 방법은 무엇일까.

신 교수는 “요새 신조어가 많은데 어르신들이 신조어 잘 모른다”면서 “‘이런 말에 대해서 ‘들어본 것 같은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알려달라’ 이렇게 얘기하면 자연스럽게 화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도 “한국 문화가 이른바 스몰토크(small talk·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중요하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해 가볍게 나누는 대화)에 매우 약하지 않나”라면서 “과거부터 보고 배운 대화 방식이 그런 질문들뿐이라 반복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도 ‘말실수’의 원인이다. 신 교수는 “때로는 꼭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릴 필요도 있다”면서 “(그런 문화 속에서) 젊은 사람들은 윗사람한테 아무 이야기나 하기 어려울뿐더러 굳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우리가 대화가 하고 싶다면 보통 상대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를 찾지 않냐”면서 “가족끼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상대가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화제를 던진다면 어린 친구들과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이와 함께 긍정적인 말 습관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말을 시작할 때 ‘아니’로 시작하는 게 굉장히 많다”면서 “이번 추석에 만나면 ‘맞다’로 한번 시작해 보자. 무조건 ‘맞아,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런 말로 대화를 이끌어 가면 훨씬 부드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