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취임 후 첫 추석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명절 선물에 전국민 화합의 염원을 담았다. 전남 순천 매실청, 전북 장수 오미자청, 경기 파주 홍삼양갱, 강원 원주 서리태, 충남 공주 맛밤, 경북 경산 대추칩 등 전국 곳곳의 특산품이 선물 상자에 담겼다.
명절마다 대통령이 사회 각 계층에 보내는 선물은 주로 지역을 안배한 특산물로 구성된다.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이 그려진 선물상자엔 지역 간 화합과 사회 통합 등의 메시지가 담긴다.
尹, 사회약자·호국영웅에 선물…전국 특산품으로 ‘화합’ 강조
윤 대통령의 이번 선물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한 원로, 호국 영웅과 유가족들, 사회적 배려 계층, 누리호 발사에 성공한 우주 산업 관계자 등 각계 각층의 1만3000여명에게 전달됐다. 윤 대통령은 홀로 생활하는 80대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이 선물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 후 강조해온 국정운영 철학과 연관이 있다. 대통령실 측은 “각 지역의 화합을 첫 명절 선물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지역화합 의미 처음 담은 盧…‘선물은 역시 술’ 신념도
‘지역 안배’ 선물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3년 취임 후 첫 추석 선물로 지리산 복분자주와 경남 합천 한과를 보냈다. ‘지역감정 극복’이라는 정치적 사명을 추석 선물에 담아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청와대는 “호남과 영남 특산품을 합친 국민통합형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이 같은 전통을 유지했고, 특산물을 고루 섞은 선물은 후임 대통령까지 이어져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노 전 대통령은 매년 전국 각지의 전통주를 한 가지씩 골라 선물하기도 했다. 재임 기간 10번의 명절 선물 중 9번이나 전통주를 선물했다. 2004년 추석에는 한산 소곡주, 2005년 김포 문배주, 2007년 전주 이강주가 전국 지역 특산물과 함께 전달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술 선물을 즐겨했다. 그의 퇴임 직전 설 명절 선물은 경기 김포의 문배주와 전남 광양의 매실액, 경북 문경 오미자청, 충남 부여 밤 등으로 구성됐다. 2019년 추석엔 충남 서천 소곡주, 부산 기장 미역, 전북 고창 땅콩, 강원도 정선 곤드레나물을 담았다. 청소년과 종교인에게는 술 대신 충북 제천 꿀이 제공됐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첫 추석엔 경기 이천 햅쌀, 강원 평창 잣, 경북 예천 참깨, 충북 영동 피호두, 전남 진도 흑미로 선물을 꾸렸다. 지역 안배를 고려한 동시에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 바람을 담은 것이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 추석 선물은 제주도 오메기술과 울릉도 부지갱이, 완도 멸치, 남해도 섬고사리, 강화도 홍새우로 구성됐다. 태풍, 폭염으로 농사가 어려웠던 당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고 판로가 좁은 국내 도서지역 농산물을 홍보하는 취지도 담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추석 선물 역시 경산 대추, 여주 햅쌀, 장흥 육포 등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담겼다. 2013년 추석 때 육포·찹쌀·잣 세트를 선물했고, 2014년에는 육포·대추·잣 세트를 선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추석 선물로 각 지역 특산 농산물을 애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엔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 대추, 전북 부안 김, 경남 통영 멸치를 선물로 보냈다.
YS는 ‘거제 멸치’, DJ는 ‘신안 김’…출신지 특산품 선호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에 출신 지역을 반영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뿐만 아니라 정계 입문 이후부터 주변에 멸치를 선물해 ‘YS 멸치’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이 멸치는 김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이 고향 거제도에서 잡은 멸치로 당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가 고향인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명절이면 신안 김과 한과, 녹차 등을 선물했다. 때로는 영부인 고 이희호 여사가 직접 고른 농산물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대통령들은 주로 한 가지 품목을 애용했다고 한다. 전두환·박정희 전 대통령은 인삼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물을 받는 대상자는 대통령 측근과 정·관계 인사 등 제한적이었다.
‘수재민에 다기 세트’…논란의 선물도
대통령의 선물이 매번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때로 예상치 못한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추석 때 집중 호우 피해주민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차(茶)와 다기 세트를 보냈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한가롭게 차를 마시라는 것이냐’는 지적이 쏟아지자 서둘러 선물을 쌀과 MP3 플레이어 등으로 바꿔 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8년 추석 당시 청와대는 황태·멸치 세트를 준비하면서 불교계 인사들에게까지 이를 선물로 보낼 뻔 했다. 다행히 내부 논의 과정에서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이 나와 별도의 선물세트를 구성해 보냈다고 한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