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도 영·호남 다 담았다…대통령 명절 선물의 비밀

입력 2022-09-09 06:07
SNS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의 추석 선물 세트. SNS 캡처

지난 3월 취임 후 첫 추석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명절 선물에 전국민 화합의 염원을 담았다. 전남 순천 매실청, 전북 장수 오미자청, 경기 파주 홍삼양갱, 강원 원주 서리태, 충남 공주 맛밤, 경북 경산 대추칩 등 전국 곳곳의 특산품이 선물 상자에 담겼다.

명절마다 대통령이 사회 각 계층에 보내는 선물은 주로 지역을 안배한 특산물로 구성된다.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이 그려진 선물상자엔 지역 간 화합과 사회 통합 등의 메시지가 담긴다.

尹, 사회약자·호국영웅에 선물…전국 특산품으로 ‘화합’ 강조

윤 대통령의 이번 선물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한 원로, 호국 영웅과 유가족들, 사회적 배려 계층, 누리호 발사에 성공한 우주 산업 관계자 등 각계 각층의 1만3000여명에게 전달됐다. 윤 대통령은 홀로 생활하는 80대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이 선물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 후 강조해온 국정운영 철학과 연관이 있다. 대통령실 측은 “각 지역의 화합을 첫 명절 선물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포장된 선물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 윤석열 김건희라고 적혀 있다. SNS 캡처

지역화합 의미 처음 담은 盧…‘선물은 역시 술’ 신념도

‘지역 안배’ 선물의 원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3년 취임 후 첫 추석 선물로 지리산 복분자주와 경남 합천 한과를 보냈다. ‘지역감정 극복’이라는 정치적 사명을 추석 선물에 담아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청와대는 “호남과 영남 특산품을 합친 국민통합형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이 같은 전통을 유지했고, 특산물을 고루 섞은 선물은 후임 대통령까지 이어져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노 전 대통령은 매년 전국 각지의 전통주를 한 가지씩 골라 선물하기도 했다. 재임 기간 10번의 명절 선물 중 9번이나 전통주를 선물했다. 2004년 추석에는 한산 소곡주, 2005년 김포 문배주, 2007년 전주 이강주가 전국 지역 특산물과 함께 전달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2017년 추석 선물.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술 선물을 즐겨했다. 그의 퇴임 직전 설 명절 선물은 경기 김포의 문배주와 전남 광양의 매실액, 경북 문경 오미자청, 충남 부여 밤 등으로 구성됐다. 2019년 추석엔 충남 서천 소곡주, 부산 기장 미역, 전북 고창 땅콩, 강원도 정선 곤드레나물을 담았다. 청소년과 종교인에게는 술 대신 충북 제천 꿀이 제공됐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첫 추석엔 경기 이천 햅쌀, 강원 평창 잣, 경북 예천 참깨, 충북 영동 피호두, 전남 진도 흑미로 선물을 꾸렸다. 지역 안배를 고려한 동시에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 바람을 담은 것이었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의 추석선물. 제주도 오메기술, 완도 멸치, 울릉도 부지갱이, 남해도 섬고사리, 강화도 홍새우 등 5종세트로 구성됐다. 청와대 제공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 추석 선물은 제주도 오메기술과 울릉도 부지갱이, 완도 멸치, 남해도 섬고사리, 강화도 홍새우로 구성됐다. 태풍, 폭염으로 농사가 어려웠던 당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고 판로가 좁은 국내 도서지역 농산물을 홍보하는 취지도 담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추석 선물 역시 경산 대추, 여주 햅쌀, 장흥 육포 등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담겼다. 2013년 추석 때 육포·찹쌀·잣 세트를 선물했고, 2014년에는 육포·대추·잣 세트를 선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추석 선물로 각 지역 특산 농산물을 애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엔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 대추, 전북 부안 김, 경남 통영 멸치를 선물로 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2008년 추석 선물.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의 대추, 전북 부안 재래 김, 경남 통영 멸치 등 특선물 4종 세트로 구성됐다. 청와대 제공

YS는 ‘거제 멸치’, DJ는 ‘신안 김’…출신지 특산품 선호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에 출신 지역을 반영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뿐만 아니라 정계 입문 이후부터 주변에 멸치를 선물해 ‘YS 멸치’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이 멸치는 김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이 고향 거제도에서 잡은 멸치로 당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가 고향인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명절이면 신안 김과 한과, 녹차 등을 선물했다. 때로는 영부인 고 이희호 여사가 직접 고른 농산물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대통령들은 주로 한 가지 품목을 애용했다고 한다. 전두환·박정희 전 대통령은 인삼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물을 받는 대상자는 대통령 측근과 정·관계 인사 등 제한적이었다.

‘수재민에 다기 세트’…논란의 선물도

대통령의 선물이 매번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때로 예상치 못한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추석 때 집중 호우 피해주민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차(茶)와 다기 세트를 보냈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한가롭게 차를 마시라는 것이냐’는 지적이 쏟아지자 서둘러 선물을 쌀과 MP3 플레이어 등으로 바꿔 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8년 추석 당시 청와대는 황태·멸치 세트를 준비하면서 불교계 인사들에게까지 이를 선물로 보낼 뻔 했다. 다행히 내부 논의 과정에서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이 나와 별도의 선물세트를 구성해 보냈다고 한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