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교사에게 욕을 하고 위협을 가해도 학교가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만류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가 피해자로서의 교사의 처지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서 교권 침해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배모(39)씨는 지난 5월 학교 측에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배씨는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 김모(9)양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과 위협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양은 생활지도를 하는 배씨에게 “어쩌라고 씨X” 등의 폭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또 노트에 빨간 글씨로 “담임 죽어”를 가득 써놓은 뒤 배씨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배씨를 노려보면서 가위로 책상과 책을 내리찍는 행동도 반복했다고 한다.
김양이 계속 문제 행동을 하자 위협을 느낀 배씨는 교권보호위원회 개최와 학생과의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릴 경우 해당 학생은 교원지위법에 따라 심의를 거쳐 최대 퇴학처분 등의 조치를 받는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미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린 아이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선생님이 학생 생각은 안 하냐’며 참고 넘어갈 것을 요구했다. 당시 김양은 다른 학생으로부터 학교폭력 신고를 당한 상황이었다. 학생에 대한 처분은 차치하고 일단 분리 조치라도 이뤄질 수 있게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별 다른 조치 없이 반복되는 위협에 노출된 배씨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병가를 내고 한 달을 쉬었다.
배씨가 복귀한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7월 김양이 배씨를 “죽이겠다”며 가위를 들고 급식소로 찾아온 것이다. 배씨는 “차라리 다들 보는 앞에서 내가 다쳐서 학교가 심각성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교권 보호가 안 되니까 나도 힘들고 반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두려움에 떨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다시 병가를 냈다.
학교 측은 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위원회 개최 반대 결정을 내렸던) 담당자는 현재 다른 학교로 옮긴 상황”이라며 “매뉴얼대로 처리했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정재석 전북교사노조위원장은 “흉기로 위협당한 교사에게 참으라고 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배씨처럼 학교 측의 만류로 교사가 아이들의 폭력에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학교 교사 A씨도 지난 4월 학교 측에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지만 결국 열리지 않았다. 당시 A씨는 특정 반 남학생들로부터 야유와 수업 방해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시작하려고 하면 이유 없이 야유를 보내고 A씨가 “조용히 하라”고 하면 되레 집단적으로 A씨를 비웃고 무시했다고 한다. 한 반에서 시작된 이런 행동은 옆 반까지 번져나갔다.
하지만 학교 측은 A씨에게 “교사가 주의를 주는 선에서 해결했으면 좋겠다”며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만류했다. 결국 A씨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서야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했다.
김동석 교총 교권본부장은 “피해 교사들은 학교로부터 ‘제자인 학생을 학교 교사가 고발한다’는 비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교권침해 문제에서도 피해자 중심주의가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