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해 한 언론사는 ‘우울증에 걸린 한국’ 국민 5명 중 1명이 걸리고 있다’는 2021 한국의 사회지표 통계청 자료를 인용하면서 우리나라 국민 중 22.2%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그 차이는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통계를 내놨다. 2030 세대들은 취업, 직장, 스트레스와 인간관계, 이성 문제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겪고 있는데 원인으로는 몇 가지가 된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 낮은 자존감, 이성 문제와 가정 문제로 불안과 고립감, 우울증을 동반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최근 5년(2017~2021)까지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겪고 있는 진료 현황을 분석했는데 통계 수치가 놀랍다. 지난해 우울증으로 인한 환자 수는 93만 3,481명으로 2017년 대비 35.1%가 증가했고, 불안 장애는 86만 5,108명으로 32.3%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중에서도 내적인 자극과 내면으로부터 생기는 마음의 울화(鬱火), 화병이 많은 것이다. 현대사회의 무서운 마음의 병이라고 이해되는 정신 질병 원인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기에는 어려우면서도 그 마음의 통증이 치유될 수 없을 때 극단적인 선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올해 초에는 국내 게임업계를 종주국으로 정착시킨 벤처기업의 신화 넥슨의 전 대표도 막대한 자산과 성공에도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부재와 사랑의 결핍, 우울과 불안 사이
연극 이야기를 하면서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대해서 늘어놓는 것은 연극 <패밀리 M의 병>(극 발전소 301, 기획 아트리버, 정범철 연출, 황승경 번역, 홍대아트센터 소극장, 작, 파우스토 파라비노)이 한 가족 마음의 부재(不在)를 통해 정신 질병이 될 수 있는 정신장애, 우울과 불안, 마음질환, 고독, 사랑과 결핍에 다루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품이 정신의학으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극 중 인물 루이지(성노진 분)의 1남 2녀와 남자친구(폴비오, 파브리지오)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털어놓았던 이야기들이 의사의 진료기록 시선으로 벌어지는 코미디 소동극이다. 삼각관계로 극 중 인물을 교차시키고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희극적인 시츄레이션을 반복적인 장면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웃음을 ‘빵빵’ 터트린다. 극 중 인물들이 겪고 있는 강박적인 사랑의 결핍과 인간애의 부재를 통해 우울과 불안을 겪고 있는 이들 가족의 병은 우리 내면이 겪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계와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고통과 정신적인 통증을 치유할 수 있는 알약과 백신은 사랑과 공감, 배려와 믿음일 것이라는 작가적 시선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가족들의 의학적(정신 치료)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문지영 분)도 루이지의 큰딸 마르타(정은정 분)와도 사랑으로 연결될 수 없는 불안과 고독을 앓고 있으니 말이다.
정범철은 희곡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우연, 돌발, 모순적 상황 등으로 장면을 극대화하고 웃음과 텍스트 사이의 강약을 조절하며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장면을 병치(倂置)시키는 속도가 좋다. 주변 인물들과 가족들의 삶을 희극적인 상황으로 확장할 수 있는 극 중 장면들을 이탈리아 희곡에 등장하는 이들 삶과 가족들 이야기가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병의 원인을 연극적으로 배치하면서도 ‘웃음’으로 치료하는 식인데 이 작품은 파우스토 파라비노의 코미디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출생인 작가는
<패밀리 M의 병> 가족들이 살아가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 되고 무대는 간소하다. 장면과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대소도구들로 공간과 장면이 분할된다. 무대 좌측으로는 의사의 상담실이다. 그 앞으로는 마을이라고 알 수 있는 미니어처가 불빛으로 미니멀하게 보인다. 의사는 정신과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되고 발견된 M 가족들과 극 중 인물들의 이야기를 내레이터 방식으로 진료 기록을 적으면서 과거이면서도 현재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무대로 배열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대 우측으로는 가족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탁자와 의자들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마리아(서율 분)과, 폴비오(유시우 분) 그리고 파브리지오(안용 분)이 모이는 공원으로 벤치가 놓여있다. 무대 우측과 후면은 집으로 들어오는 문과 반대 통로 후면은 부엌으로 처리된다. 줄거리는 이렇다. 이들 가족에게 공통으로 부재하고 있는 것은 우울증으로 자살한 루이지의 부인으로 1남 2녀에게는 엄마다. 루이지는 불안으로 시달리고 치매와 건망증도 있으며 손, 발이 떨리는 극도의 불안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큰딸 마르타는 가족을 부양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의사를 사랑하면서도 아빠와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는 현실로 인해 고백할 수조차 없다. 루이지는 큰딸과의 대화와 생활 통제에 의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기도 하는데 부인의 부재와 정신적, 신체적 병으로 가족들한테 가장(家長)으로 책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심리적인 공황에 시달린다.
둘째 딸 마리아(서율 분)은 바람둥이 약혼 예정 남 풀비오(유시우 분)와 사이에서 사랑의 결핍으로 극도의 불안감과 갈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풀비오는 인체 면역결핍증(HIV) 검사를 받을 정도로 진실한 사랑의 공감 능력이 부재해 보인다. 플레이보이 기질로 마리아는 약혼을 갈등하게 된다. 폴비오의 친구 파브리지오(안용 분)는 사랑고백 조차하지 못하는 극심한 내성적인 성격이다. 작가는 폴비오를 친구의 여자 친구를 짝사랑하게 된 인물로 만들어 이 작품의 주제와도 같은 ‘진실한 사랑의 공감’을 밀어 넣는다. 사랑이 마리아로 향하면서 작가는 관계의 우연과 모순적인 돌발성으로 관계 구도를 설정하고 에피소드는 코미디적 상황으로 연결해 극은 연속적인 웃음과 관계 설정의 흥미를 유발한다. 이런 식이다. 친구 몰래 사랑 고백을 하기 위해 마리아 집으로 찾아간 파브리지오는 루이지와 가족(남동생 쟌니, 언니 마르타)들 한 테 그날 식사 초대로 방문한 마리아의 약혼 예정인 폴비오 인줄 알고 벌어지는 상황들과 장면의 속도들은 작정하고 웃음을 주려는 영국의 대표적인 희극작가인 레이쿠니의 작품 ‘라이어’보다도 웃음의 강도는 작품에서 발화될 수 있는 웃음의 타이밍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데 100분 동안 웃음이 연속적으로 터지면서도 장면의 분위기를 진지한 극으로 돌려놓는 정범철 연출의 연극성과 웃음의 경계를 유지한다.
돌발적인 삼각관계가 되어버린 마리아의 문제를 가족 토론으로 결정하고 아빠의 권위로 해결해보려는 루이지와 병을 앓고 있는 아빠를 통제하려는 마르타를 향해 내면이 폭발하게 된다. 갈등적인 대화들이 오가고 큰딸을 향해 뺨을 날린다. 마르타도 아빠의 뺨을 때리면서 무대는 정적으로 ‘어, 어, 어’하면서 관객은 두 사람의 심리적인 갈등에서 원인이 되는 책임감, 결핍, 우울, 고독,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인한 <패밀리 M의 병> 가족들의 최악의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막내 쟌니(이건 분)도 엄마의 자살과 부재, 마리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결정들, 큰누나 마르타의 헌신과 의사와의 관계, 아버지의 정신적인 장애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원작에서 쟌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설정되는데, 각색된 작품에서는 사랑의 결핍과 정신적인 통증과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처리되는데 마지막 장면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셀프 선택을 하게 된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마지막 대화가 마음으로 박힌다.
마리아는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면 언니는 뭘 가장 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마르타는 “난 어디 가본 곳이 없으니 선택할 수도 없네. 가고 싶은 곳을 찾아야지, 새롭게 시도하는 거야. 각자 다니다 가끔 만나서 이렇게 대화나 나누자”고 말한다. 엄마의 부재로 아빠와 가족을 헌신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강박과 심리적인 구속으로 사랑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마음의 병을 앓아온 마르타는 비로소 자신을 위한 결정을 통해 심리적인 억압에서 해방된다. 치유의 길을 떠나면서 가족과 타인의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아빠 루이지를 간병인과 동생 쟌니 한 테 맡기고 집을 떠나게 하면서 작가는 공감이 없는 타인과 가족을 위한 일방적인 헌신과 배려는 우울과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이어져 <패밀리 M의 병>으로 나타나게 되고 각자 행복할 때 루이지도, 동생 쟌니도, 가족 모두가 앓고 있는 정신적인 병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된 다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해야 아빠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러한 마르타의 심리상태가 될 때까지 연극 <패밀리 M의 병>은 가족들의 삶과 아픔을 돌아 극 중 인물들의 우연과 돌발적인 상황들로 뭉개져 극을 사랑의 웃음으로 치유하면서도 작품의 궤도를 무대에서 이탈하지 않고 패밀리 M 가족들과 병의 원인을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있다.
가족의 실타래로 엮어져 무대로 올라오는 웃음과 이들 내면의 상처들, 가족의 갈등과 아픔, 우연과 모순적인 장면의 박자들을 균형적으로 배치하면서 정범철은 우리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울증, 분노,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면 <패밀리 M의 병>을 관극하고 이들이 살아온 과거의 삶의 방식과 현재의 선택을 들여다보고 웃음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패밀리 M의 병> 의 처방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 특히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정범철 식 고른 앙상블을 보였으면서도 파브리지오로 분한 안용은 진지하면서도 장면과 상황을 웃음의 템포로 몰고 가는 능청스러운 타이밍의 연기가 돋보였다. 100분 동안 웃음과 진지함으로 쾌속 질주하는 연극이다. 정범철이 이끄는 극발전소 301은 작, 연출로 하반기에 두 편의 작품을 연달아 올린다. <인질극 X)을 9월 21일부터 10월 2일까지 아트리버 기획으로 대학로 물빛 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고 <건달은 개뿔>은 10월 27일부터 11월 6일까지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2관에서 공연된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