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없지만… ‘어둠 속 희망의 불빛’

입력 2022-09-08 17:00 수정 2022-09-08 17:00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한 식당에서 문종련(80·여)씨 가족들이 양초와 손전등을 켜놓고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내 솔직한 심정으로 복구 좀 빨리 되라고 소원 비는 양초도 켰다이가”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직격타를 맞은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한 식당에서 문종련(80·여)씨가 손전등과 양초 불빛에 의지해 그릇을 닦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건물 내부가 정전으로 어두운 모습.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에서 상인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오천시장 건물 내부는 정전으로 인해 대낮임에도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복도 한가운데 임시방편으로 세워둔 전등 하나만 켜 놓은 채 많은 상인이 떠밀려 온 흙모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추석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지만 명절 생각할 겨를은 없어 보였습니다. 문 씨는 “가게가 이래가 우째 추석 보내겠노..손자 손녀 가족 다 내려오지 말라 했다”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제발 나라에서 보탬이 돼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추어탕 전문점에서 상인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추어탕 전문점에서 상인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명절 음식을 주문받는다고 현수막이 붙은 추어탕 전문점에서는 가구와 집기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상인 한 명이 물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상인은 “명절 음식 하려고 고기도 50만원 주문해서 받아 놨는데 그 냉장고가 떠내려가서 찾지도 못했지”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떡집 앞에 송편이 버려져 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떡집에 송편의 사진이 부착돼 있다.

건너편 골목의 떡집 앞에는 추석을 위해 준비했던 송편들이 봉지에 담긴 채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떡집 점주는 “다행히 장부는 정리하려고 집에 갖다 놔서 태풍에 안 떠내려갔어요”라며 “어제는 가게 치우느라 바빠서 못하고, 오늘 아침 손님들한테 전화 다 돌려서 추석 떡 못 드린다고 죄송하다고 말했죠”라고 설명했습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시장의 한 가게 수족관에 죽은 생선이 가라앉아 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시장의 한 가게에서 상인이 가만히 앉아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시장의 골목에 죽은 생선이 버려져 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시장의 골목에서 반려견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구룡포시장의 상황도 심각했습니다. 한 가게의 수족관은 죽은 생선을 처리하지 못해 물이 썩어 초록색이었습니다. 골목은 쓰레기 더미가 끝없이 늘어선 채 곳곳에서 악취가 풍겼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상인들이 가만히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 상인은 “뭐 할 수 있는 게 없지. 추석에 원래 조기 같은 거 팔아야 하는데 뭐 팔 게 없지”라며 “대목인데 일 안 해서 편타 에휴..”라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시장 인근의 과일 가게 앞에 추석용 과일 상자가 버려져 있는 가운데 점주의 가족이 바나나를 씻고 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구룡포시장 인근의 과일 가게에서 모녀가 함께 사과를 씻고 있다. 상인은 "딸이 직장에 연차를 내고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간의 위안이 될만한 소식이 이날 저녁에 들렸습니다. 피해 현장을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시와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자체는 사유·공동시설 피해에 대한 복구비의 일부(약 50~80%)가 국비로 전환돼 재정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피해 주민들은 국세 납부 예외, 지방세 감면 등 18가지 혜택과 더불어 건강보험·전기·통신·도시가스요금 감면 등 12가지 혜택도 추가로 받습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 골목에 추석이 표시된 달력이 걸려 있다.

7일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한 분식점에서 11세 소녀가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

오천시장의 한 분식점에서는 한 11세 소녀가 열심히 빗자루질하며 가게 안의 물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분식점 사장은 “울 집 막냉이 참 착해요. 집이 이 모양인데 학교를 우예 갑니까”라며 “복구 끝나면 먹으러 와요. 우리 집 완전 전문이라 맛있어”라고 미소로 배웅했습니다.

포항=이한결 기자 alwayss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