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솔직한 심정으로 복구 좀 빨리 되라고 소원 비는 양초도 켰다이가”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직격타를 맞은 경북 포항 남구 오천시장의 한 식당에서 문종련(80·여)씨가 손전등과 양초 불빛에 의지해 그릇을 닦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오천시장 건물 내부는 정전으로 인해 대낮임에도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복도 한가운데 임시방편으로 세워둔 전등 하나만 켜 놓은 채 많은 상인이 떠밀려 온 흙모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추석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지만 명절 생각할 겨를은 없어 보였습니다. 문 씨는 “가게가 이래가 우째 추석 보내겠노..손자 손녀 가족 다 내려오지 말라 했다”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제발 나라에서 보탬이 돼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명절 음식을 주문받는다고 현수막이 붙은 추어탕 전문점에서는 가구와 집기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상인 한 명이 물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상인은 “명절 음식 하려고 고기도 50만원 주문해서 받아 놨는데 그 냉장고가 떠내려가서 찾지도 못했지”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건너편 골목의 떡집 앞에는 추석을 위해 준비했던 송편들이 봉지에 담긴 채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떡집 점주는 “다행히 장부는 정리하려고 집에 갖다 놔서 태풍에 안 떠내려갔어요”라며 “어제는 가게 치우느라 바빠서 못하고, 오늘 아침 손님들한테 전화 다 돌려서 추석 떡 못 드린다고 죄송하다고 말했죠”라고 설명했습니다.
구룡포시장의 상황도 심각했습니다. 한 가게의 수족관은 죽은 생선을 처리하지 못해 물이 썩어 초록색이었습니다. 골목은 쓰레기 더미가 끝없이 늘어선 채 곳곳에서 악취가 풍겼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상인들이 가만히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 상인은 “뭐 할 수 있는 게 없지. 추석에 원래 조기 같은 거 팔아야 하는데 뭐 팔 게 없지”라며 “대목인데 일 안 해서 편타 에휴..”라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약간의 위안이 될만한 소식이 이날 저녁에 들렸습니다. 피해 현장을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시와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자체는 사유·공동시설 피해에 대한 복구비의 일부(약 50~80%)가 국비로 전환돼 재정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피해 주민들은 국세 납부 예외, 지방세 감면 등 18가지 혜택과 더불어 건강보험·전기·통신·도시가스요금 감면 등 12가지 혜택도 추가로 받습니다.
오천시장의 한 분식점에서는 한 11세 소녀가 열심히 빗자루질하며 가게 안의 물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분식점 사장은 “울 집 막냉이 참 착해요. 집이 이 모양인데 학교를 우예 갑니까”라며 “복구 끝나면 먹으러 와요. 우리 집 완전 전문이라 맛있어”라고 미소로 배웅했습니다.
포항=이한결 기자 alwayss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