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 ‘밥퍼’ 인근 굴다리에 설치된 트리 모양 조형물을 놓고 밥퍼 측과 인근 주민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11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청은 지난달 25일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를 운영하는 다일복지재단에 답십리 굴다리 지하차도 양측에 부착된 트리 모양의 조형물에 대해 “불법 광고물에 해당되니 자진철거하라”고 명령했다. 또 “오는 13일까지 명령이 이행되지 않으면 강제철거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철거 대상은 성탄 트리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진 높이 8.6m, 너비 3m의 목재로 만든 조형물이다. 상단에는 밥퍼 로고가 들어가고, 그 아래로 ‘이웃을 행복하게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조형물이 부착된 지하차도 위로는 기차와 지하철이 다니고, 조형물 양옆 지하차도로는 일반 차량들이 지나다닌다.
밥퍼 측은 “2002년 문화부 장관이 이곳에서 진행되던 밥퍼의 성탄 예배를 보고 감명을 받아 (조형물) 제작을 제안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희망 트리’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 조형물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한국철도공사는 지난 1월 “조형물이 부착된 담벼락이 노후화돼 조형물이 전도될 위험이 있다”며 밥퍼 측에 철거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밥퍼는 당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7월부터는 동대문구 일부 주민들이 조형물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을 줄지어 접수하기 시작했다. 민원을 접수한 주민들은 밥퍼의 조형물이 구청에서 허가하지 않은 불법 옥외광고물이라 지적했다. 인근에서 무료급식소가 운영되는 상황에 대한 불편함도 드러냈다.
한 주민은 구청에 제출한 민원서에 “이 굴다리는 외부 주민이 이 지역을 처음 찾을 때 마주하는 상징적인 관문인데 마치 구의 자랑이라는 듯 (밥퍼의)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며 밥퍼가 동대문구의 ‘대명사’가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다른 한 주민도 “구청이 해당 시설을 운영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며 즉각 철거를 요구했다.
철거 요청을 전달받은 밥퍼 측은 “굴다리 인근은 이전부터 나눔을 실천해온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며 이곳을 ‘나눔의 거리’로 지정해 보존해 달라고 역으로 구청에 제안했다. 안전이 우려된다면 조형물의 크기를 줄여 다시 제작하겠다는 타협안도 제시했다.
구청이 소수의 민원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직접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밥퍼 관계자는 “민원인 중에는 내년에 인근 초고층 아파트에 입주하는 ‘예비 주민’도 많은 것으로 안다”며 “오랫동안 동대문구에서 함께해온 밥퍼와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도 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해당 조형물을 ‘불법 옥외광고물’로 규정한 구청은 강제철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밥퍼 측에서 세 차례 요청한 구청장과의 면담도 성사되지 않았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이미 계고까지 들어간 이상 10월까지 미룰 사안이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철거 진행에 관해 철도공사와 협의 중인 상태”라고 밝혔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