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매년 캐나다 밴쿠버가 있다.
7년 동안 살면서 수없이 왕래하던 길인데도 금년 가을 다시 찾아갔을 때 여간 낯설지 않았다. 10여 년 만에 갔으니 몸의 거리가 마음의 거리라는 말이 실감 났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국으로 지정이 되어서인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시민뿐 아니라 우리 교민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고 자부심이 넘쳐 보였다.
나는 밴쿠버에 도착한 바로 이튿날 예전에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인데 길을 잃고 헤매었다. 변화된 도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차를 몰고 나섰기 때문이다. 엉뚱한 길에서 40여 분이나 헤매며 약속 장소를 찾지 못하여 우왕좌왕하였다. 지도를 펼쳐 보고 잘못된 길에서 빠져 나왔지만 전혀 모르는 동네에 도달해 있곤 하였다.
지도를 잘 읽어 주지 못하는 내게 남편은 핀잔을 주었다.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고 피곤한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였다. 밴쿠버의 맑은 공기와 청청한 가을 하늘은 변함없건만 아름답게 느낄 여유가 없었다. 약속 시간에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더욱 불안했다. 갓길에서 다시 지도를 펼쳐 들고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짓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차창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이 은빛인 팔십 세 가량 되어 보이는 노신사였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지금 코퀴틀람 센터를 찾아가려는데 지도를 잘 못 읽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남편의 목소리에는 그분의 호의에 감사함이 가득했다. 노인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지금 정 반대편에 와있습니다.”
한쪽에 차를 세우고 그분의 조언을 들었다. 차분한 어조로 걱정하지 말라면서 지도를 펼쳐 놓고 길에 정확한 표시를 해가며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한가지 당부를 했다.
“운전하면서 절대로 왼쪽을 보지 말고 오른쪽만 바라보고 계속 가세요. 세 번째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해서 20분쯤 지나면 센터에 도착합니다. 왼쪽은 절대 보지 말아요.”
그는 우리가 미덥지 않은 듯 머뭇거리면서 더 물어볼 게 없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약속한 친구에게 연락부터 하라고 전화까지 빌려주었다. 감사하다는 말은 너무나 가볍고 모자랐다. 벽안의 신사 친절은 큰 감동이었다.
우리가 차 방향을 반대편으로 돌려 떠나려 할 때 그는 다시 오른쪽만 바라보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신사는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고 우리도 손을 흔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는 우리가 시선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었다. 밴쿠버의 싸늘한 밤공기가 오히려 따뜻하게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지구촌의 참다운 인간애를 느꼈다. 그분의 온정에 삶의 기쁨과 가치를 깨달으면서 말없이 오른쪽만 보면서 달렸다.
그 노신사의 친절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엊그제 어떤 아주머니가 내게 길을 물었다. 나는 노신 사의 친절이 생각나 자상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사소한 일상과 감정 속에서 인간애를 느끼곤 한다.
그 노신사는 우리 부부에게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왼쪽을 보지 말고 오른쪽만 보면서 가라고 하였을까. 왼쪽이란 오른쪽의 반대말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쪽을 이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가야 할 길이 있고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있다. 그러나 살다가 한눈을 팔기도 하고 바르지 않은 길인 줄 알면서도 잘못 들어서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잘못 들어선 것을 바로 깨달아 안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새가 갇힌 그물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리라. 살면서 종종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마다 우리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준 고마운 얼굴들이 눈앞을 스쳐 갔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삶의 크고 작은 근심 앞에 도움이 되어준 천사들이 많이 있었다.
오른쪽만 바라보기도 바쁜 세상에 기우뚱거리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다가 낭패를 본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것은 내 목적지가 아닌 건너편 길에 한눈팔며 방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해가 저물기 전, 마음을 가다듬고 목적지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지혜는 아주 짧은 순간 내 앞에 머문다. 멀고 먼 인생길에 언제 장애물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미욱한 나는 부딪히면서 힌트를 얻고 이해하고 세상과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그네의 노래>
온 집안에 향기가 가득하다
보라이카, 하이비스커스, 부겐빌레아
국경을 넘어 맨발로 걸어온 이국의 꽃들
오늘 아침 산업 현장에서 만난
나르띠, 얌, 쎄라, 수아미
가난을 이기려고 고향을 떠나올 때
그들의 꿈은 날개 달고 솟았는데
오늘 대한민국 서울
미세먼지 아주 나쁨
언어가 다르고 체취가 다른
피부색이 다르고 풍속이 다른
저들이 뿌리를 내리겠다고 한다
고맙게도 우리와 함께 우리가 되자고 한다
사실 나도 아둔한 나그네일 뿐인데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A)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부장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