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농아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회가 충분히 제공된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코다’(2021)로 제94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미국 배우 겸 감독 트로이 코처는 6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열린 제19회 세계농아인대회 홍보대사 위촉식 및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또 “농인 배우도 열정만 있다면 비장애인 영화인들과 똑같이 활동할 수 있다.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 달라”고 말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코처는 배우 윤여정을 가장 먼저 찾으면서 “기회가 된다면 윤여정 배우를 만나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이 수화로 그를 호명하고 트로피를 전달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처는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를 회상하며 “윤여정 배우께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I love you)’라고 수어를 해주셔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트로피를 들어주시고 편안하게 수어로 소감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신 것도 대단히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미나리’는 한국에서 미국에 이민 오는 과정을 찍었는데 이는 우리 농아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언젠가는 윤여정 배우와 같이 작업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극단 활동을 시작으로 연극·드라마·영화를 오가며 활동해 온 코처는 “제 안에 있는 열정이 멈추지 않는 한 포기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달려나갈 것”이라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다만 “배우 생활을 하는 건 굉장히 힘들었다”면서 “저는 정부 지원 없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지만, 한국에서는 장애인 배우가 정부의 많은 지원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늘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농인 배우의 역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농아인들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똑같이 삶이 있고, 아픔이 있고, 기쁨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는 많은 농아인이 영화배우에 도전하고 있고, 역할도 늘어나고 있습니다”라며 “한국 영화계에서도 농아인 배우에게 역할을 맡기는 걸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코다’ 이후 영화 출연 제의를 많이 받고 있다는 그는 “저에게 맞는 배역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서 후배들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다. 저처럼 배우를 꿈꾸는 장애인분들이 열정과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세계농아인대회는 내년 7월 제주도에서 열린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두 번째 개최국이 됐다. 세계농아인연맹(WFD) 주최로 4년마다 열리는 이 행사는 131개 회원국이 교육, 문화, 예술, 수어 등에 대한 실태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장이다.
코처는 “세계농아인대회는 농아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정부를 상대로 필요한 정책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기르게 해주는 장”이라면서 “한국 정부나 관계자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써주셨으면 한다”고 관심을 당부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