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안숙선은 왜 이제야 판소리 인간문화재 됐나

입력 2022-09-06 13:15 수정 2022-09-06 14:28
안숙선 명창이 6일 판소리(춘향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됐다. 국립극장

‘판소리계 프리마돈나’ ‘영원한 춘향’으로 불리는 안숙선(73) 명창이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6일 안 명창을 판소리(춘향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하면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김소희(본명 김순옥·1917∼1995)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웠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판소리 전승에 힘써 왔다”고 설명했다.

안 명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에 통달한 예인으로, 특히 춘향가를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안 명창이 이제야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즉 속칭 인간문화재가 됐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이것은 안 명창이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인간문화재였던 스승 박귀희(1921∼1993) 명창의 계승자여서 생긴 일이다.

전북 남원 출신인 안 명창은 9살에 이모이자 가야금(신관용류)의 명인인 강순영 선생과 외삼촌이자 동편제 판소리(흥보가) 거장이었던 강도근 명창의 손에 이끌려 국악을 시작했다. 남원의 아기 명창으로 불리며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던 안 명창은 19살에 서울로 상경해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김소희와 박귀희 문하에서 판소리와 가야금을 배웠다. 두 스승은 안 명창의 예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당대 최고 명창들인 정광수(수궁가), 성우향(심청가), 박봉술(적벽가), 오정숙(흥보가) 등과 가야금 산조 명인인 함동정월(최옥삼류), 원옥화(강태홍류), 김죽파(김죽파류) 등을 사사한 안 명창은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 및 산조에서 일가를 이뤘다.

안 명창은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주역을 도맡았으며 1986년 판소리 5바탕(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을 완창했다.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인간문화재가 됐지만 안 명창은 판소리에 더욱 진력했으며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도 김소희 선생의 소리를 오롯이 받았다’고 하는 안 명창이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되지 못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안타까워했었다.

안 명창은 이번에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되면서 기존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자격을 잃게 된다. 과거에는 이매방(승무·살풀이춤), 한영숙(승무·학춤)처럼 복수 종목의 인간문화재가 나온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전승 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명의 보유자가 여러 종목에서 동시에 인정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만 같은 종목에서 같은 유파의 인간문화재는 인정하고 있다.

안 명창은 지난 7월 문화재청이 자신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을 때 “더없는 기쁨이다. 앞으로도 우리 소리를 더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온 힘을 쏟겠다”라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한편 현재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상황을 보면 홍보가는 정순임(80) 이난초(61), 심청가는 김영자(71) 정회석(59), 수궁가는 김수연(74), 적벽가는 송순섭(83) 김일구(82) 윤진철(57) 명창이 인정돼 있다. 춘향가는 신영희(80) 명창이 지난 2013년 보유자가 됐다. 그리고 판소리 북장단을 맞추는 고법 보유자로 김청만(76) 박시양(60) 고수가 인정돼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