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지성운동의 아버지는 당신입니다”

입력 2022-09-05 23:19 수정 2022-09-06 07:29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가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에서 지인과 친구들이 베풀어준 환송행사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한국에 기독교 지성운동의 씨를 뿌렸던 웨슬리 웬트워스(한국명 원이삼·87) 선교사가 고국으로 돌아간다. 1965년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기독교세계관 서적을 보급하고, 사람을 연결하며, 한국의 기독교세계관 학문 운동에 헌신해왔다.

평생 자비량 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한국의 교육 발전과 인재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올 봄엔 특별 귀화자가 됐다. 하지만 최근 치매 초기 증세와 알츠하이머 증상 등을 보이면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홍병룡 아바서원 대표는 “독신인 웬트워스 선교사님이 말년 동안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영구 귀국을 결정한 것 같다”고 전했다.

미국으로 떠나는 웬트워스가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교수 등 지인의 도움으로 한 요양원에 들어갈 것이라고 지인들은 귀띔했다. 오는 9일 출국을 앞두고 그의 지인들은 조촐한 환송식 자리를 마련했다.

웨슬리 웬트워스(앞줄 가운데 앉아있는 이) 선교사가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에서 열린 자신의 환송예배를 마친 뒤 친구, 지인 등에 둘러싸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 1층 소예배실. 그의 친구와 제자와 지인 등 80여명이 모인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 환송예배’는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다.

“미국 유학시절, 웬트워스 선교사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책 한권을 먼저 건네더군요.”(김종현 ES그룹 회장) 이 말에 장내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웬트워스는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항상 기독교세계관 관련 서적을 건네면서 교제를 시작하는 특유의 방식이 있는데, 모두 다 한번씩 경험한 듯 웃음으로 공감을 표시한 것이었다.

박종삼 전 월드비전 회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웬트워스와 50년 지기이면서 둘 다 한평생 독신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홀로 떠나는 친구에게 “나보다 먼저 죽으면 절대 안된다”며 덕담을 건넸는데, 눈가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강영안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교수는 “40년 전쯤 그를 만났다. 그는 진짜 크리스천”이라며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앞서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신앙과 삶’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1970년대부터 그와 만나 교제하면서 기독교 학문운동에 정진했던 이들은 웬트워스를 두고 “대한민국 기독교 지성운동의 씨앗을 뿌린 사람”이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날 웬트워스를 떠나보내기 위해 모인 이들은 이국 땅에서 반세기 넘게 사역한 그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은 감사패를 준비했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비롯해 좋은교사운동, 한동대학교 등 무려 15개 단체가 동참했다.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 환송예배에 참석한 인사들. 왼쪽부터 웬트워스와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강영안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교수, 신국원 총신대 명예교수.

웬트워스 선교사의 답사 차례. 단상에 선 그는 한결같았다. 소박하고 검소한 모습이었다. 낡은 수첩을 넣은 오른쪽 상단 주머니는 한쪽으로 축 쳐졌고, 오래된 회색 가디건도 늘어져 있었다.

웬트워스는 “내가 치매 초기라서 매우 잘 잊어버린다. 이해해 달라”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각을 키우자”고 강조했다. 이어 “나의 단점까지도 보듬어 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나그네로 와서 힘써 복음을 전하고 다시 나그네로 떠나는 벽안의 선교사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글.사진=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