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갈린 땅에서 샤를 드골 같은 중재자 될까?

입력 2022-09-05 17:20 수정 2022-09-05 17:47
독일 바덴뷔르텐부르크주 루드빅스부르크 시(stadt)교회에서 4일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11차 총회 손님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 참석한 이들이 교회 본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62년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독일 루드빅스부르크성에서 독일 국민 앞에 섰다. 독어가 유창했던 드골 대통령은 오랫동안 프랑스와 사이가 좋지 않던 독일인들에게 “독일은 위대한 민족이며 프랑스와 동반자 관계에 서자”고 연설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 국민을 격려하며 승전국 프랑스 대통령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었다.

이듬해 1월 22일 드골 대통령과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가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만나 ‘엘리제 조약’을 맺었다. 독일·프랑스 화해 협력조약을 통해 악화할 대로 악화한 양국 관계에 화해의 물꼬가 트였다.

60년 전 화해의 메시지가 선포됐던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루드빅스부르크 시(stadt) 교회에서 4일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11차 총회 손님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 현장에는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 경험이 남북 분단의 자리에도 옮겨지길 원하는 바람으로 가득 찼다.

예배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짐바브웨, 라이베리아 등에서 온 WCC 참가단 30여명을 비롯해 교인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와 김보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사무총장도 인사했다.


예배는 예장통합 평양노회와 루드빅스부르크노회가 이어온 교류의 결실이기도 했다.

두 노회는 2013년 선교 협정을 맺고 다양한 교류를 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코로나19 중에도 양 노회 관계자들은 줌으로 ‘평평루’라는 이름의 대화 마당도 지속했다. 평양노회는 분단으로 노회의 뿌리인 평양에 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루드빅스부르크노회와 교류를 시작했다.

엘케 당겔마이어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 노회장은 “엘리제 협약 이후 프랑스와 독일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무척 활발해졌고 원수의 나라에서 우정을 쌓는 동반자가 됐다”며 “분단된 한반도에도 화해의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희용 평양노회장도 “원수였던 프랑스와의 화해가 출발한 루드빅스부르크의 경험이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에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면서 “양국 교회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을 통해 통일의 기적이 있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4일 예배에 참석한 WCC 관계자들이 1962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독일인들에게 연설했던 루드빅스부르크성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설교는 미카엘 베르너 루드빅스부르크 노회장이 ‘가인과 아벨’을 주제로 전했다.

베르너 노회장은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인간 역사에서 최초로 미움이 폭력으로 드러난 예”라면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폭력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슬픈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움과 갈등의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계속해서 평화와 화해의 길을 추구하며 그 길을 따라 걷자”고 권했다.

이준엽(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신학대학원)씨는 “분단된 한국에 대해 독일교회가 이렇게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다”면서 “이런 예배에 북한교회 분들도 함께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루드빅스부르크(독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