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날카로운 풍자와 진지함을 유쾌하게 비트는 충청도식 언어에는 이철희만 표현해 낼 수 있는 강력한 연극이 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도부터 극단 실험극장에 들어간 이철희(44)는 연극 <금의환향>에서 시골 우체부 역으로 연극무대에 데뷔한 뒤 TV, 영화, 연극무대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연극무대에서는 특별한 캐릭터와 연기로 존재를 드러냈고, 연출들은 그때마다 “너무 튀는 거 아냐”고 말했다. 그만큼 이철희는 튀는 연기보다는 배우들과 다른 연기를 구현(具現)하고 고민하는 배우였다. 본능적인 연기의 감각은 유연해 보였고, 극중 인물로 분할 때마다 튀는 연기보다는 본능의 감각과 무대공간과 장면에서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를 그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연기 설정들이 그의 본능적인 감각들과 충돌될 때 연기의 스타일은 극과 장면의 분위기를 이탈할 수 있는데 이철희는 작품마다 그의 스타일로 인물을 그려냈다. 감각에 집중되고 몰입되어 감정으로 발화는 속도가 빠른 그는 튀어 보이면서도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다.
그는 제4회 벽산희곡상에서 <조치원 해문이>(2014)로 대상을 받고 희곡작가로 등단하더니 국립극단에서 공연된 <조치원 해문이>에서는 작가, 연출, 배우로 무대를 그려내면서 이 작품은 이철희 연극의 충청도연극 시리즈 1탄이 되었다. 이후 그는 극단 코너스톤을 창단하고 <닭쿠우스>(2018)로 <조치원-새가 이르는 곳>(2021)등 충정도 연극 시리즈를 연달아 선보여 오면서 진지함을 유쾌하게 비트는 언어와 패러디는 날카로운 풍자로 연출 특유의 놀이성과 현대사회의 희비극성을 무대로 들어내면서 이철희를 알렸고 이현화 작 <불가불가, 不可不可> 는 반세기가 되어가도 ‘계백의 칼자루’로 한국 사회의 권력과 정치 현실을 베어내는 풍자의 날카로움이 번뜩거리게 했다.
이 작품에서도 이철희는 메타연극의 놀이성을 특유의 희극성으로 현재화 해 동시대의 환부(患部)를 찌르는 알레고리와 진지한 장난기는 동시대를 타격하는 정치 권력의 시대로 역사를 재 환기하고 풍자시키는 감각적인 불가불가로 재현해 냈다. 두터운 검정 뿔테를 쓰고 인터뷰 장소로 나온 이철희는 극단을 창단하고 전투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오면서 표정은 진지해져 있었고 웃음의 감각은 살아있었다. 느릿한 충청도 말투가 베여 있으면서도 고향의 언어는 무대의 언어가 되었고 질문을 던지고 그의 말이 쏟아질 때는 겸손해 보이면서도 그가 바라보는 연극의 방식과 이야기들을 에둘러 말하지 않았고 인터뷰의 사이가 벌어 질 때는 배우적인 감각으로 말의 템포와 표정의 변화가 다양했다.
| 배우 이철희를 말하다 ‘유치원 때부터 배우 꿈 꿔’
그를 무대에서 각인시킨 것은 정의신 작가의 <푸른 배 이야기>(2013)에서 1인 3역(작가, 통통배 선생님, 삼식이)을 맡은 작품에서였다. 정의신 작품 특성상 배우들은 날 것의 연기로 무대 공간의 한계점까지 달려가고 있었고 배우들은 고정화된 연기패턴과 역할을 던지고 1인 3색의 다양한 캐릭터로 극중 인물들로 무대를 활보하면서 배우 에너지의 극한적인 한계성을 보였다. 때로는 정적의 내면성을 들어내야 하는 연기로 정동의 파동을 만들며 ‘푸른 배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이철희는 감각의 연기를 보이고 있었는데 다른 배우들보다 연기의 설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정 장면에서는 소리의 에너지를 공간의 밖으로 보냈고 진지하면서도 배우 내면의 심연들이 가공 없이 극중 인물로 분하는 연기를 보면서 ‘연기를 잘하는 개성 있는 배우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이철희를 배우로 인식 시킨 작품이 정의신 작가의 <푸른 배 이야기>(2013)에서였다.
─인터뷰 공간에는 음악 소리가 흘렀다. 주인한테 꺼 달라고 말하자 끌 수는 없고 줄이겠다는 말이 크게 들렸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흐르고 말을 꺼냈다. ‘무대에서 배우로서 희비극을 연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진지하면도 뭔가 다르게 표현하려는 배우의 모습도 좋았는데, 지금은 작가·연출가로서 옷을 갈아입은 것 같군요.’
“엄청 날카로운 질문인데요.(웃음) 전업 배우였을 땐, 제 연기 스타일과 패턴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와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연출가들이나 동료 배우들이 봤을 땐 그게 좀 이질적이었나 봐요. 제 연기가 독특하고 결이 다르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그것에 대해 눈치를 보진 않았어요.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 다른데,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스스로 제약을 걸기는 싫었거든요. 주변 시선이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았죠. 분명 연출가들이나 시장에서 요구하는 연기 패턴이 존재해요. 하지만 그들에게 맞추는 것보다는, 내 옷을 입고 나만의 색깔로 연기를 해나가겠다고 다짐했어요. 지금은 연출을 통해 제 세계를 펼치게 되니까, 훨씬 더 자유로워요. 제 스타일을 배우들에게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되게 당황하는 것도 사실이지만요.”
그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댄스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고향인 대전에서는 가수가 되는 루트를 찾기가 힘들었다.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진학하면서 연극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평생 연극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십 대 초반부터 연극을 ‘신앙’처럼 섬기며 연극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결혼하면서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 공연도 뜸해졌고 매니지먼트사와도 문제가 있었다. “TV 드라마 단역 같은 걸 하면서 아주 적은 돈을 받으며 근근이 살았습니다. 암울하고 피폐했죠. 아르바이트마저 잘 안 구해지더라고요. 되는 것도 하는 것도 없으니까,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제가 뭐라도 하고 있다는 걸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시작한 게 글쓰기예요. <조치원 해문이>의 원래 제목은 <충남 햄릿>인데. 그걸 한 장 한 장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죠. 온갖 공모전에서 다 떨어지고, 그럼 그렇지 뭐, 그냥 쓰는 데에 의의를 두자고 생각했는데 벽산희곡상에 덜컥 당선이 돼버렸어요.”
─ 당선 이후 국립극단에서 <조치원 해문이>(2015)가 공연됐고, 이 작품의 연출가·작가·배우까지 모두 맡으셨지요.
“작가가 돼야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은 건 아니고, 진짜 말도 안 되게 등단을 한 거였어요. 벽산희곡상에 작품을 내고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저한테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당신이 왜 그걸 기다리고 있어, 강아지 산책이나 시키고 오지.(웃음) 100:1로 당선이 되고 나선, ‘앞으로 글을 써봐도 된다’는 일종의 자격증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국립극단에서 <조치원 해문이>를 공연했을 땐, 제가 프로듀스를 하지 못했어요. 초연 이후 제 작품을 직접 제작하기 위해, 한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사업자등록을 내고 극단을 만들었어요. 배우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이고, 연출은 대학 다닐 때 해본 경험이 있으니 축적된 노하우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했었죠.”
─ 그는 작가로 등단하고 연출로 데뷔한 <조치원 해문이> 이후 작품에는 작, 연출로 극단 코너스톤을 이끌고 있다. 배우 출신인 이철희는 작품을 하면서 배우들한테 어떤 것을 요구하죠?
“제가 요구하는 건 딱 한 가지예요. 당신의 것이 뭐냐? ‘배우 자신이 가진 게 무엇이냐’가 제일 중요해요. 요즘 시대에 스타니슬랍스키 연기법을 도입해서 사실주의적인 연기를 하는 것에는 별로 의미를 못 찾겠어요. 예를 들어 한 달 굶은 사람 연기를 한다고 해서 진짜 굶어야 할까요? 그것이 상상을 토대로 연기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면, 관객에게 똑같이 와 닿는다면, 굳이 왜 사실적인 것들을 끌어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배우들한테 다른 걸 요구하기보단, 너무 고생하지 말고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 최대한 당신 것을 하라고 말해요. 코너스톤 단원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주로 외부 배우들과 협업을 하는데, 다들 결이 너무 달라요. 그걸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건 텍스트고, 배우들은 각각 어떤 색깔을 지니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 2003년 연극 <금의환향>으로 데뷔해서 <푸른 배 이야기>, <분노 하세요>(2018), <철가방 추적작전>(2019) 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배우로 활동해왔다. 배우로 무대에 설 때와 지금은 어떤가.
“포지션은 너무나 다른데, 결국 하나로 만난다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걸 창조해내고, 그걸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평가 받고, 또 스스로 만족감과 부족함을 느끼잖아요. 결국 어떤 분야든 이러한 과정을 겪는 거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 극작이나 연출에도 도움이 됩니다.”
─ 다양한 연극무대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는 작품은 <푸른 배 이야기> 라고 했다. 이 작품은 자이니치들이 한 인간으로서 가진 삶의 경계와 디아스포라의 소외성을 다뤘다. 배우의 한계까지 무대에서 밀어붙이고 연기의 본능적인 날 것의 감각으로 극중 인물화 시키는 정의신 연출과의 작업을 그는 기억해 냈다.
“연기를 하다 보면 테크닉이란 게 생기잖아요. 근데 그 테크닉이 정의신이라는 사람 앞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더라고요. 저 자신이 발가 벗겨진 느낌이 들었어요. 정의신 연출님은 계속 이렇게 물어요. 너는? 그래서 너는?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일까’가 아니라, ‘근데 너는?’이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세요. 저 자신이 극 중 상황과 ‘쌩’ 으로 부딪혀야 하죠. 그러니까 순화되고 정화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원초적인 나의 감정 그대로를 뿜어내야 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성대가 나가더라고요. ‘괴로워도 또 일하라. 안주하지 마라. 이 세상은 순례다.’ 이 대사 한마디를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목이 상했는데도 연출님은 ‘더, 더, 더’를 요구했어요.”
“그때 정말 나의 밑바닥, 나의 한계를 마주했던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의구심도 들었어요. 내가 지금 연기를 하는 건지, 저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건지.(웃음) 도를 닦는 것처럼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요. 그만큼 저를 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갈 수 있었어요. 진짜 연기가 뭔지, 진짜 연극이 뭔지를 강하게 느꼈죠. 아름답고 매끈하고 가려지고, 이런 건 어떻게 보면 더 쉽거든요. 반대로 가장 원초적인 것, 사람밖에 남지 않는 연극. 이것이 정의신 작품의 미덕이자 진짜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는 마당놀이 문화가 있어서, 관객들과 함께 배우들이 장난도 치잖아요. <푸른 배 이야기> 정도가 당시 일본 연극의 입장에서 꽤 파격적인, 열린 연극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 이철희의 연기는 희극적이면서도 때로는 비극성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때로는 배우의 직관과 감각의 본능이 무대에서 표현되는데 배우 자신과 극중 인물로 이탈될 때도 있지 않나.
“제 연기가 굉장히 직관적이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연출가를 믿어요. 내가 하는 게 아닌 거 같으면 얘기해 달라고 말해요.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도 욕망이 있으니까. 하다가 내가 선 밖을 나가면 얘기해줘요’ 라고요. 20대 때까지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계산을 했고, 이제는 그냥 ‘나’라는 사람이 그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감정대로 가는 거죠. 정제되지 않기 때문에 거칠고 널 뛰는 것처럼 보일 순 있어요.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신나고 즐거워요.”
─ 철인 3종 경기 선수처럼 쓰고, 연출하고, 연기까지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군요.
“참 할 것도 많고 부담스러운 일이예요. 제작까지 하게 되면 지원 사업에 공모한다든가 지난한 과정을 또 겪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배우든 연출가든 작가든 내 세계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건 되게 기적적인 일이거든요. 내가 판을 만든다는 게 어찌 보면 힘든 일이지만, 그건 당연한 거예요. 어떤 직업이든 힘듦이 있을 거고요. 제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연극을 하는 건 정말 펑키(funky)한 일이예요!”
| 작가, 연출가로 이철희
<조치문 해문이>를 통해 ‘햄릿’의 비극성을 웃음으로 다이어트 시켜내는 날카로운 가능성을 보였고 놀이로 돌진해 무대의 경계를 허물며 말의 세계 ‘에쿠우스’를 닭들의 이야기 ‘닭쿠우스’ 패러디로 전복시켜내더니 이철희는 충청도식 연극의 특별한 장르를 개척했다.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을 통해서는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현대적 희·비극의 경계를 무대로 배치하는 기발함으로 3부작을 통해 정점(頂點)을 보여주었다. 그가 <조치원 해문이>를 발표할 당시 주변에서는 시시콜콜한 말들이 들렸다. 햄릿을 충청도 언어로 패러디 시켜내는 감각보다는 ‘B급언어, 가볍다, 그냥 재밌다’라는 인식들을 했다. 이철희 연극을 다른 각도로 봤다. 패러디를 통해 동시대로 환기 시켜내는 감각은 돋보였고 극적 완성도와 무대의 미학성은 한국연극의 패러디연극 문화를 한 단계 높였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철희의 웃음코드와 놀이성으로 극의 질감은 달랐고 특허를 낸 것처럼 상업연극이 대학로 연극문화의 길목을 잡고 있을 때 예술성 있는 패러디연극을 대중적으로 정착시켰다.
─ <조치원 해문이>는 <햄릿>을 전복시켜, 조치원의 개발과 투기를 둘러싼 권력을 그려낸 작품이었죠. 충청도 사투리로 희곡을 쓰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벗어놓은 안경을 다시 쓰고는 시선을 창문으로 향했다. 등단 이후 그의 이야기를 전투적으로 무대로 그려온 이철희는 표정으로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달려온 7년의 연극 마라톤을 느리게 말을 꺼냈다.
“처음 들어간 극단 선배님들은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제가 원래 대전 사람이고 부모님은 충청도 분들이신데, 연기를 하면서 사투리를 쓰면 안 된다고들 하니까 말투를 고쳐야 했죠. 그런데 극단을 나오고 나서 다른 극단들의 공연을 많이 접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극을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제가 가진 언어에도 강점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단순히 <햄릿>을 충청도 버전으로 바꾸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제가 극작을 어디서 배웠다면, 인물이나 시대 배경을 먼저 세팅해 놓고 쓰기 시작했을 텐데, 중간 중간 설정을 바꾸느라 수정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죠. 공간이 조치원이고 세종시가 들어오면 인물들이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아, 이걸 고치면 위랑 안 맞잖아!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고치고 또 고치고.(웃음) 이런 지난한 과정을 오래 거쳤어요.”
─ <조치원 해문이>가 가볍다는 평가도 있었어요.
“예술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건데, 연극계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구나, 연극은 결국 보수적이거나 교훈을 주거나 사회 운동적이거나 담론을 던져야만 좋은 평가를 받는 건가 싶었죠. 패러디가 가볍다고들 하는데, 사실 셰익스피어가 이 시대에 그대로 공연된다는 건 모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 여성혐오가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데, 그걸 보고 박수를 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요. 일각의 평가에 당시 속은 상했었지만 그 후로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 이후로, 이를 악물고 쓰고 연출하면서 이제는 대학로 연극문화의 주류(主流)가 된 것 같다.
“전 사실 여전히 불안해요.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아요. 지금도 10월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늘 0에서 시작하는 거 같아요. 연기를 할 땐 제가 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만큼만 하면 되겠구나’라는 게 보이는데, 연출이나 극작은 ‘이게 맞을까, 이게 최선일까’라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어요. 작품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매번 신뢰할 수는 없더라고요. 시작점에서 항상 불안과 싸우는 거죠.”
─ <닭쿠우스>(2018)도 충청도 연극시리즈다. 희곡의 전통성을 잇기보다 패러디 구성을 시도해서, 고전을 이철희만의 방식으로 바꾸어 놓은 작품이다. 충청도가 고향인 이철희에게 삶의 정서가 꿈틀거리는 ‘언어’가 ‘무대언어’로 환치(換置)되면서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배경은 자연스럽게 충청도의 한 마을이 되고 극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생명력은 능청스러우면서도 날카로움이 베여있는 이철희 연극언어의 리듬으로 변주된 작품이었다.
“<조치원 해문이>를 통해, 충청도 언어를 가지고 잘해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닭쿠우스>는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를 패러디한 작품인데, 원작이 지닌 본질적인 질문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을 충청도 언어와 접목시키다 보니 <조치원 해문이>와도 연결점이 생기는 거죠. 알런이 잔인한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의 존재는 정상성에 대한 비판이잖아요. <닭쿠우스>에서 그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부각하기 위해, 다이사트를 패러디한 다이다이 박사를 치료의 대상으로 설정했어요. 거기에 더해 ‘현대인인 다이다이 박사를 옥죄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2016년 국립극단에서 공연된 <더 파워>(니스-몸 스토크만 작)에 배우로 참여했었는데, 그걸 하면서 포스트드라마 형식에 대해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 경험을 한국식으로 내 작품에 녹여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게 <닭쿠우스>입니다. 우리가 숭배하고 원하고자 하는 것은 다 결국 닭대가리다!(웃음)
─ 재구성한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을 통해서는 진지하면서도 날카로운 웃음으로 현실사회를 타격하는 충청도 식 언어와 이철희의 연극문법으로 정착했고 <불가불가>를 통해서는 그의 연극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제 작가, 연출, 배우를 완전히 탈환했군요.’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2021)은 ‘<햄릿> 속 인물들은 왜 이럴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인물들의 행동이 한국 정서상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잖아요. <조치원 해문이>를 만들면서 늘 기형도의 ‘조치원’이라는 시를 가지고 다녔었거든요. ‘그 시가 주는 느낌과 클로디어스가 살인하러 가려고 탄 기차 공간이 만난다면, 오묘한 연민을 자아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에 기형도의 시를 가져왔습니다.”
“<외경>(2021)은 기독교인으로서 제가 가졌던 질문에서 비롯된 이야기예요. 나는 항상 죄를 짓고 죄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런 내가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왜 최초의 인류는 선악과를 따먹었지? 애초 그곳에 선악과를 두지 않았다면, 이런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신학을 공부하는 친구들한테도 이런 질문들을 해봤지만,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지 않더라고요. 이 세상은 구원받을 수 없는 곳이고, 어쩌면 이미 이 세상이 지옥일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은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고, 우리가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인간에게 내려진 신의 선물이 아닐까. 이렇게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가지고 <외경>을 만들었어요.”
─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은 전작 <조치원 해문이>보다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이철희 연출가 특유의 놀이성과 현대사회의 비극성이 좀 더 밀도 있게 전달됐어요. 이철희의 ‘놀이성’은.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규칙이라고 여기는 것, 이 작품은 이렇게 가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없애버리는 거죠. 그래서 저한테 놀이는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장치예요.”
─ 그는 철학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작품 <외경>에 애착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철희는 유쾌한 사람일 것 같았는데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밝은 기질도 타고났기 때문에 내면에서 양면이 충돌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두운 면을 가리기 위해 그의 특별한 웃음코드가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고.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물었다. ‘한국 연극계에는 아직도 보수적인 질서가 있다. 여전히 대학로 시대는 괴물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 연극은 견고하게 쌓아 올리는 탑이 아니라, 계속 무너뜨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계속 무너지고 새로운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야 하는데, 한쪽으로 장려하고 몰아가는 경향이 있어요. 선입견을 품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비평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 극단 코너스톤을 통해 무조건 재밌는 연극을 할 계획이다. ‘대중성 있는 재미가 아니라, 예술성 있는 재미를 말하는 건가.’
“맞아요. 덧붙여 저항의식으로 만들어야죠. 사실 페미니즘, 젠더, 노동, 역사 다 좋지만 요즘 연극계에선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창작자들은 자신도 거기에 발을 얹고 싶은 충동이 든단 말이죠. 처음 연극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마치 그것만 좋은 연극이라고 선입견을 가질까봐 두려워요. 물론 그런 화두들은 세계적인 이슈죠. 하지만 ‘우리 연극의 오리지널리티는 뭐지, 우리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건 뭘까’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신극이 서양에서 왔다고 해서 계속 서양의 것을 이어받으려 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사라지잖아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유럽의 텍스트를 그대로 갖고 와서 새롭다고들 하는데, 저는 좀 회의적이에요. 그 시대 유럽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철학과 사상을 매끄럽게 포장해서 내놓고, 사람들은 박수를 쳐요. 답답한 사실이에요.”
그의 말을 듣고서 “동의합니다. 우리 토양에 맞는 연극들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어떤 연극들은 한옥에 유럽식 인테리어를 해 놓은 것처럼 겉도는 느낌이에요. 우리 연극이 쌓여간다는 느낌보다는, 서양 연극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이철희 연출가를 통해, 연극계가 좀 바뀌지 않겠어요?”
| 이현화의 <불가불가, 不可不可>, 이철희의 <불가불가> 이야기
<불가불가>는 역사적 사실성을 극중극 형식으로 배치하고 무대는 공연 연습이 진행되는 마지막 리허설이 진행 중인 극장이 무대가 된다. 연출은 극장 전체를 ‘불가불가’ 리허설 공간으로 개방하고 관객은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현장으로 견학하러 온 것 처럼 느껴진다. 관객들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연극 속 연극’으로 진행되는 극중극 장면에서 배우들이 역사적인 역할로 분해 장면을 사실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황산벌 전투, 임진왜란, 병자호란, 무신의 난, 을사조약, 독립군과 부인의 고문장면까지 연극의 최종 리허설을 위해 배우들은 동선 맞추기, 대사 연습, 소품 준비, 몸 풀기, 극 중 인물 되기 과정을 메타연극의 놀이의 행위로 바라보게 된다.
무대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재현되는 극중극 장면과 배우들의 행위를 연극 놀이로 인지하고 참여하게 되면서 연극 속 연극에 웃음을 터트리고 재미를 느끼면서도 굴욕스러운 역사의 환부(患部)가 비치고 아내 목을 치고 황산벌 전투에 출정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병치될 때 관객은 희곡이 난해하게 느껴지면서 ‘어, 어, 무슨 말이지’ 하게 된다. ‘불가불가’는 연극으로 재현되는 극 중 극을 통해 80년대를 지나 2022시대의 한국 사회의 정치 현실을 풍자한다. 불멸의 고전을 이철희는 해체와 뒤집기보다는 원작의 결을 살려내는 원형을 유지하면서 이철희는 80년대 불가불가의 시대극 의상을 지워내고 극 중 극의 역사를 웃음으로, 때로는 동시대를 타격하는 정치권력의 시대로 역사를 재 환기하고 풍자시키는 감각적인 불가불가의 놀이로 전진한 작품이다.
─ 서울시극단에서 <불가불가>를 올린다는 얘기 들었을 때, 80년대 이현화 작가를 현재로 소환하고 그 작품을 이철희를 연출시키는 기획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작품인 <불가불가>를 동시대에 올리려는 생각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큰 틀은 문삼화 전 서울시극단 단장님이 제안해주셨고, 그 안에서 제가 작품을 선택했어요. 혹시 사극도 되냐고 여쭤봤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대본을 찾다가 대학교 다닐 당시 헌책방에서 봤던 이현화 희곡집이 떠올랐어요.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몰랐지만, 그 형식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부조리극을 한창 좋아할 때기도 했고, 작가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 <불가불가>를 통해서 동시대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것 같다.
“갈팡질팡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역사 속 인물과 시스템 안에서 질질 끌려 다니는 현대인이 닮았다고 생각해서, 그 둘을 마주보게 했어요. 사실 원작이 너무나 정리가 잘 돼 있고 뼈대밖에 없는 심플한 극이라, 각색이 쉽지는 않았어요. ‘원작을 확 바꿔서 이철희만의 색깔을 내보겠다’ 보다는 텍스트를 존중하면서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살짝 비켜나가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정치적인 풍자를 개인의 입장으로 살짝 비틀기 위해 예민한 고민들이 필요했죠.”
─ 한 연출가는 “이철희는 기존 연극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이다”라는 말을 했다. 앞으로 작품 준비는.
“10월 20일부터 30일까지 예술공간혜화에서 <맹진사댁 경사>를 공연할 예정이에요. 한국에 있는 좋은 작품을 발굴해서 우리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재생산 해 보고 싶어요. 그동안 <맹진사댁 경사>(1943, 오영진 작)가 많이 공연됐지만, 오늘날에 맞게 재창작된 경우는 없었던 거 같아요. 원작에는 유교 사상이 짙게 깔려있고, 여성의 주체성이 결여돼있어요. 그런 부분들과 더불어 장애와 관련한 것들도 수정을 했어요. 많은 등장인물을 7명으로 압축시켜, 소극장에서 소박하게 올려보려고 해요.”
─ 충청도 연극시리즈로 이철희를 알렸지만, 그만큼 한계도 있을 거 같다는 말들도 있다.
“한계를 걱정하진 않아요. 왜냐면 새로운 충청도 연극을 계속 만들어낼 거니까요. 말투가 아니라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새로운 이야기를 쭉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맹진사택 경사>도 논산이 배경으로 충정도 언어로 각색된다. 이철희의 충정도 연극 시리즈는 끝이 없는 것 같고 이번 작품도 기존 공연형식 하고는 질감이 다를 것 같다.
“충청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끝은 없다고 봐야죠.(웃음) <맹진사댁 경사>도 논산이 배경인데 지역색을 전면으로 내세우진 않았어요. 이번에도 충청도 언어를 드러내는데 충청도의 매력은 아무래도 지역민들의 성향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대놓고 하는 것도 아니고, 들으라고 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니까, 시적이고 의뭉스럽기 때문에 연극언어로도 특별해 지는 것 같고요. (웃음)”
─ 연극인이자, 이철희가 무대에서 쓰고, 연기하고, 연출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와이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항상 하는 얘긴데, 아내가 없었다면 저는 그냥 객사했을 거예요.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웠어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고, 마음 편히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지지해줬어요. 아내와 함께 극단 코너스톤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버티는 데까지는 해보자, 한 번 더 가보자, 계속 가보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사실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데, 뭐 죽지는 않으니까요.(웃음) 그리고 벽산문화재단에도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 벽산희곡상이 제 연극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줬고,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오늘 연극계에 대한 이런저런 답답함을 말씀드렸는데, 이제 저도 선배가 된 만큼 후배들이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져야겠지요. 또 새로운 제 예술 세계를 개척해나가고, 더디 가더라도 정진하겠습니다.”
이철희는 <조치원 해문이>이 때보다 연극적인 철학성이 더 성숙(成熟)되어 있었다. 기존 연극형식의 질서를 웃음으로 저항하고 패러디로 맞받아치며 작품들을 성공시키고 달려온 시간들이 고단함으로 베여 있으면서도 그의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연기의 본능은 작가로 연출가로 이동되어 있었다. 한 연출가의 말처럼 “기존 연극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이라는 이철희의 평가는 이제 더 이상 연극의 변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이철희 표 연극을 만들어내면서 한국연극의 언어와 형식을 독창적인 생산 방법으로 확장한 개척자 같아 보였다. 이철희는 대학로 연극에서 주류가 되어 있었다.
그의 말을 복기(復棋)했다.
“우리의 신극이 서양에서 왔다고 해서 계속 서양의 것을 이어받으려 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사라지잖아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유럽의 텍스트를 그대로 갖고 와서 새롭다고들 하는데, 저는 좀 회의적이에요. 그 시대 유럽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철학과 사상을 매끄럽게 포장해서 내놓고, 사람들은 박수를 쳐요. 페미니즘, 젠더, 노동, 역사 다 좋지만 요즘 연극계에선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창작자들은 자신도 거기에 발을 얹고 싶은 충동이 든단 말이죠. 처음 연극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마치 그것만 좋은 연극이라고 선입견을 가질까봐 두려워요.”
그는 사진 촬영을 하면서 배우의 감각으로 돌아왔고 검정 백을 메고서는 조치원 해문이의 선왕(先王)처럼 사라졌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