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낡지 않는 잠옷

입력 2022-09-04 23:35 수정 2022-09-05 16:08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남해안의 작은 섬 거금도다. 내 잔뼈가 굵어진 고향 이름이다. 나는 사면이 푸른 물결에 둘러싸인 울창한 나무 숲속에서 자랐다.

면 소재지인 우리 동네 장터에 5일 장터가 생겼다. 그 장터에 뜻밖에도 양장점이 처음 생긴 것이다. 양장점 주인은 딸 부잣집인데 그 딸들은 모두 모델들 같았다. 그 언니들이 양장점에 나와 있으면 매장이 환하게 보였다. 동네에 그런 양장점이 생긴 것은 공연히 내 어깨까지 우쭐대게 했다. 우리 집이 동네에서 제일 크고 넓었기 때문에 나도 겉으로 보기에는 부잣집 딸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어머니가 다른 집 어머니들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부모님 덕에 심각한 가난은 극복해 나간 셈이었으나 결코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열한 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들 치다꺼리에 단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마치 우리 집을 두고 생겨난 말인 듯했다. 위로 모두 오빠들이었는데 남자들이라서 그런지 어머니의 고달픔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거기에 열한 명의 형제와 농가에 없어서는 안 될 일꾼들까지 이십여 명이나 되는 가족들. 그들을 한 끼도 굶기는 일 없이 먹이고 입혀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식구들 먹이고 입히는 일에 늘 피곤한 아버지는 삶의 고뇌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이었다.

억장이 무너지지는 큰 고통이 들이닥칠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너 하나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했다. 엄마의 마음에 켜켜이 쌓인 한숨과 눈물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세계 너머에 출렁거리던 외로움들은 멍들고 얼룩진 세월이라 눈물겹다. 거금도의 바람은 내 머리 위에서 웅웅거리며 삶의 비밀들을 말해주는 듯했다. 어머니는 내 소원이 무엇인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순한 귀를 갖게 되면 운명조차 거스를 수 있을까. 어머니는 무엇에게 홀려서 우리나라 지도 끄트머리에 귀양살이 같은 삶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불확실한 운명에 갈망들이 들끓었던 젊은 날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나는 다섯 오빠와 남동생들까지 일곱 명의 남자 틈에 끼어 열 아들보다 귀한 내 딸이란 말을 듣고 자랐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내 의기는 충천했다. 같은 딸이면서도 내 아래로 태어나서 별 귀여움을 받지 못한 여동생들에게는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부모님께 근심이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부모님을 어떻게든 도와드릴 방법이 없을까 하는 그러한 궁리가 뇌리에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딸이 그 누구보다도 예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머니는 내 친구가 입은 세일러복을 보시더니 곧장 나를 데리고 남자 옷을 짓는 양복점을 찾아가 꽤 비싼 비용을 들여 고급 세일러복을 맞추어 입히셨다.

나는 그 옷을 저녁마다 머리맡에 두고 자다가 깨면 만지곤 했다. 곤색, 네이비블루라고 하는 색이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집안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딸에게 베푸는 어머니의 정은 언제나 달콤하고 안락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은 방학 때마다 나를 산에서 살게 했다. 나는 오빠들을 설득해서 산을 헤매며 나무를 했다. 겨우살이 준비를 해드리고 나서야 마음이 좀 놓이곤 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막 돌아온 내 손을 잡더니 새로 생긴 그 양장점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주인 언니가 내 어깨에 옷감을 대어보고 다시 얼굴에도 대어보았다. “이 색이 잘 맞아요. 무늬도 잘 어울리고요.”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았다. 딸을 예쁘게 키우고 싶은 어머니 마음이 눈에 가득했다. 그리고 겉모습과 마음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언제나 여자는 구별된 행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속옷과 이부자리와 식기란다. 잠옷 입고 잘 때마다 큰 꿈을 꾸어라. 좋은 잠옷은 잠자리를 반듯하게 해주고 여자를 단정하게 만든단다”고 하시던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누구나 태중에서는 어머니를 옷처럼 입고 자란다. 그러다가 태어나서는 배냇저고리를 입고 성장한 후에는 비로소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눕는다. 나는 어머니가 맞추어 주신 잠옷을 입고 자리에 누울 때마다 어머니가 나를 안고 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게 느껴졌다. 내게 잠옷을 맞추어 주시려고 비상금까지 털어 내시는 정성이 나를 키웠다. 아무나 그런 갸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때의 가난과 내 엄마의 슬픔과 외로움을 큰 딸인 나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늘 위험한 생각을 하시다가도 고아가 되어 살아가야 할 내 인생의 질곡을 염려하셨다. 밤마다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며 논두렁에 머리를 기대고 딸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내 어머니는 미래의 꿈을 내게 입혀주셨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융단 잠옷을 고급 외출복과 맞먹는 값을 치르고 맞추어 입히셨다. 살림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딸이 귀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고인이 된 지 오래지만, 요즘도 의상실 앞을 지나칠 때면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 가던 길을 멈추곤 한다. 내 몸이 자라서 그 잠옷이 맞지 않게 된 후에도 나는 오래도록 옷장 안에 간직했다. 그것은 내 추억 속에서 낡지 않고 퇴색되지도 않은 내 옷으로 내 마음에 입혀져 있다.

나도 결혼하여 품을 떠난 아이들이 찾아와 머무를 때면 새 잠옷을 준비한다. 미래를 향한 원대한 이상을 가슴에 품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하고 싶어서다.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A)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전병선 부장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