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줘도 못 먹는 경찰

입력 2022-09-04 21:03

사실 경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4·19혁명 전까지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경찰은 직접 수사권은 물론 영장청구권 등 수사와 관련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그야말로 호환 마마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경찰은 4·19혁명 때 스스로 제 발등을 찍고 말았다. 당시 경찰은 이승만 정권을 보위하려고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 수백명의 시민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후, 경찰의 힘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국민이 아닌 권력에만 충성하는 경찰에 국민이 철퇴를 내린 것이다. 결국, 모든 수사의 주체는 검찰이 되었고 경찰은 수사 보조자의 지위에 머물게 되었으며, 영장도 검사를 통해서만 발부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경찰은 옛 영광과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나름대로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런 경찰의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로비 덕분인지 김대중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민생치안과 관련된 일부 범죄에 한해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겠다고 공약한 바 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경찰 수사권 독립 절대 불가’를 외치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에도 수사권 중 일부라도 경찰에 돌려주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모든 수사권을 틀어쥔 검찰의 결사반대로 경찰의 오랜 염원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렇게 경찰의 염원이 공염불에 그치려는 순간 구세주가 나타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걸었던 ‘검찰 권력의 비대화와 이에 대한 견제’를 실행하기 위해 검경 수사권 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다.

2020년 1월 13일.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 날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경찰이 수사권 대부분을 되찾은 날이기 때문이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이 법률은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했고,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주었다. 다만, 아직 경찰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던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경제·선거 범죄 등에 대해서는 검찰도 수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경찰은 다시 한번 국민에게 충성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요즘 경찰이 내놓은 수사 결과를 보면 이승만 정권 시절 국민이 아닌 권력에 충성하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인다.

최근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 관련 사건들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7시간 녹취록’ 사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무혐의 불송치, 김건희 여사 서울의소리 기자 매수 의혹 무혐의 불송치, 윤 대통령 삼부토건 뇌물수수 의혹 무혐의 불송치, 김 여사 아파트의 뇌물성 전세권 설정 의혹 및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 무혐의 불송치, 김 여사의 모친 잔고증명서 위조 공모 의혹 무혐의 불송치, 윤 대통령 김 여사 허위경력 의혹에 대해 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혐의 무혐의 불송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죄다 면죄부를 줬다. 앞으로 남은 수사도 불 보듯 뻔한 결과가 예상된다.

줘도 못먹는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경찰은 권력에만 충성하다 국민에게 버림받았던 그 시절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닌지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노한 국민이 버리기에 앞서 호시탐탐 권토중래를 노리는 검찰에게 먼저 통째로 먹힐 수 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