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당장 찍어봐” 제2 n번방, 미수 피해자 더 있다

입력 2022-09-04 16:16
지난 1월 피해자가 텔레그램에서 받은 메시지 중 일부. 엘 혹은 모방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성착취물을 요구하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제2의 n번방’ 주범으로 알려진 엘(가칭)이 활동하던 시기 유사한 방식으로 성착취 범행을 저지르려다 미수에 그친 사례가 최소 3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0대 K양은 지난 1월 B씨로부터 자신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퍼지고 있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받았다. 이 시기는 엘이 ‘나는 붙잡히지 않는다’고 자신하면서 과거의 n번방과 비슷한 수법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K양이 직접 해당 방에서 어떤 내용의 대화가 오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B씨에게 텔레그램 대화방 링크를 받아 입장하자 협박이 시작됐다. B씨는 실명과 가족관계 등 K양의 신상정보를 언급하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압박했다.

B씨는 K양이 트위터 등에 성인용품 관련 게시물을 올렸었다는 점을 약점 잡고 “너의 사생활이 알려져도 괜찮겠냐”며 성착취물을 요구했다. 그는 “1분 내로 대답하지 않으면 신상정보를 뿌리겠다. 당장 영상을 찍어 보내라”는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면서 겁을 줬다. K양이 “가족과 함께 있어 내일 찍어 보내겠다”고 애원해도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당장 화장실에 가서 아무 영상이라도 찍으라”고 협박했다. B씨는 K양이 대화 내용을 캡처해 증거로 남길 수 없도록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삭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피해자가 텔레그램에서 받은 메시지 중 일부. 엘 혹은 모방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성착취물을 요구하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동일 인물에게서 성착취 영상 촬영을 강요받은 여성은 최소 3명으로 미성년자 2명과 성인 1명으로 파악됐다. 성인은 직업이 있어 신상을 특정하기 쉽고 사생활이 주변에 알려졌을 때 받는 사회적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해당 성인 피해자는 공무원이었는데 B씨는 “회사나 연인에게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했다.

피해자들은 성착취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나 활동가 등에게 상황을 공유했고 “연락을 끊으라”는 조언을 받아 다행히 성착취 영상 촬영까지 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B씨가 언제든 자신의 신상을 폭로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상 회복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이 수사기관 신고를 망설이는 사이 B씨는 자취를 감췄다.

B씨가 엘과 동일인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엘의 수법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에서 그를 엘로 의심한다. 엘 역시 “사진과 신상정보가 유포되고 있다”며 도움을 가장해 접근한 뒤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유인해 성착취물을 강요했다. 엘의 모방범이거나 공범일 가능성도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엘을 추적하는 동시에 공범 여부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