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간 현금수송, 비밀문서 수발신 등 업무를 도맡아온 한국금융안전이 새 주인을 찾기 위해 시장에 나온다. 이 회사 지분 60%를 보유한 KB·신한·우리·IBK기업은행이 지분 매각을 결정하며 사실상 손을 떼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회사 내 노사갈등과 경영권 분쟁에 지친 은행들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해석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31일 KB국민은행을 주관기관으로 한 ‘한국금융안전㈜ 주식매각협의회’를 꾸리고 이들이 보유한 한국금융안전 지분에 대한 주식 매각 절차를 시작했다.
한국금융안전은 은행 간 현금 수송이나 비밀문서 송수신 등 업무를 주로 처리하는 기업이다. 지난 1990년 이 같은 업무의 외주화 필요성을 느낀 6개 시중은행이 합심, 공동출자해 설립했다. 지난 2014년 지분을 팔고 나간 하나은행(외환은행 지분 포함)을 제외한 3대 시중은행과 IBK기업은행이 주요 주주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이들의 지분율이 59.54%에 달한다.
사실상 은행권 자회사격인 만큼 시장점유율도 압도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권 내 현금수송 시장은 한국금융안전과 브링스코리아가 양분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매출 비율로 보면 전체 매출 규모 가운데 3분의 2가량을 한국금융안전이 차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70%에 육박하는 업계 1위 한국금융안전이 설립 32년 만에 매물로 나온 배경에는 이 회사 내부에서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CEO 리스크’가 있다. 7월 22일까지 대표이사를 맡은 김석 대표는 이 회사의 사실상 최대주주다. 김 대표 본인은 대표이사 연임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주주인 시중은행들이 반대 의사를 비치며 경영권 갈등을 빚어왔다. 그 결과 현재 대표이사는 공석 상태다.
은행들이 김 대표의 연임을 반대한 이유는 수년간 이어져 오는 심상치 않은 노사 갈등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금융안전지부 노조원들은 “김 대표가 주52시간 제도를 악용해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급여를 삭감해왔다” “전체 직원의 80%가량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등 주장을 펼치며 김 대표와 대치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는 1년 넘게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농성 천막을 설치하고 경영 정상화를 요구 중이다.
노조 일각에서는 주요 주주인 시중은행이 사회적 책무 차원에서 김 대표 연임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임직원 입장에서 주주인 우리(시중은행)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이해는 가지만 이해관계가 있는 갈등 속에서 특정 편을 든다는 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은행들이 경영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금감원과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앞장서서 다른 주주은행들을 설득시키고, 의결권을 모아 경영 정상화를 위해 대표이사 교체라는 특단의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도 지난해 7월 국회 앞 농성장을 찾아 “현금수송 수수료가 급격히 오르는 등 상황에서도 은행들은 항의도 없이 이 회사와 계약을 계속해서 맺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금수송업체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분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갈등 관계에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을 떼는 게 낫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결국 은행들은 지속되는 사내 분쟁에 휘말리는 등 실이 득보다 크다는 판단이 들자 지분을 매각하고 아예 발을 빼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오랜 갈등에 지친 KB국민은행이 다른 은행들에 선제적으로 공동 엑싯(출구전략)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금융안전은 2018년 1억원 순이익을 끝으로 2019년(-7억원) 2020년(-20억원) 2021년(-7억원) 등 연속적인 적자를 기록 중이라는 점도 고려 요소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